국내 채권시장에서 국고채 장기물 수익률이 급락하면서 미국 국채 수익률을 밑도는 한.미간 금리 역전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한국은행이 침체경기를 살리기 위한 대책으로 콜금리를 추가 인하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어서 이같은 금리역전이 고착화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이와 함께 한은의 금리정책이 경기를 살리기보다는 채권시장의 "머니게임"만 부추긴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90년대 일본이 그랬듯이 정책금리가 연 3%대 초반으로 내려가면서 경기조절 기능을 상실하는 "유동성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금리 역전 후 격차 더 벌어져 한국의 국고채 10년 수익률이 미 국채 10년물 수익률을 밑돌게 된 것은 지난 8월12일 금융통화위원회가 콜금리를 인하한 직후.다음날인 13일 국고채 10년물은 연 4.19%를 기록,사상 처음 미 국채 10년물(연 4.231%) 밑으로 떨어졌다. 이후 미 국채 수익률 등락에 따라 일시적으로 국고채 수익률이 높아진 날도 있었지만 지난 4일에는 국고채 10년물이 연 3.88%,미 국채 10년물은 연 4.17%로 그 차이가 0.29%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신동준 동부증권 연구원은 "국내에선 콜금리 인하예상과 공급부족까지 겹쳐 장기 국채 금리가 하락세인 반면 미국은 재정적자로 인해 장기국채를 계속 찍어내고 정책금리도 인상추세여서 당분간 금리 역전 상태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장기 국채 금리가 하락한다는 것은 그만큼 장기적인 성장탄력이 둔화된다는 증거로 해석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국내 부동자금이 고금리를 좇아 해외로 이탈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시장 전문가들은 한·미간 금리 역전이 당장 자금 이탈을 가져오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미국 채권 투자 절차가 간단하지 않은데다 환(換)리스크가 있어 지금 정도의 금리차로 자금 이탈을 점치기는 무리라는 시각이 많다. ◆유동성 함정에 들어서나 지난 8월 한국은행이 콜금리 목표치를 0.25%포인트 인하했지만 실물 경기를 살리는 데에는 별로 기여하지 못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에선 추가 인하를 기정사실화하고 있지만 한은 내부에서는 자칫 일본식 유동성 함정에 빠져들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본이 지난 90년 연 6%였던 공정할인율을 95년에는 0.50%까지 끌어내렸지만 경제가 10년 가까이 하강곡선을 그렸다. 일본 정부와 중앙은행이 금리인하를 통해 통화량을 늘리고 매년 10조엔이 넘는 재정사업을 폈지만 투자와 소비는 살아나지 않았다. 최근 국내 상황에 비춰보면 이같은 유동성 함정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한은 관계자는 "이미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석달째 4% 안팎을 기록하고 있고 유가급등으로 물가압박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금리정책이 과연 효과를 볼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