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院산책] (11) 상원사 용문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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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인데도 찾기가 쉽지 않다.
"경기의 금강"이라 불리는 양평 용문산 중턱에 자리잡은 상원사(上院寺) 용문선원(龍門禪院).용문사에서 서쪽으로 3.7 쯤 떨어진 곳이지만 산 아래에 이르기까지 변변한 이정표 하나 없다.
물어 물어 절로 올라가는데,문 하나가 길을 막아선다.
상원사의 산문(山門)이다.
그러나 여느 사찰의 일주문처럼 번듯하지 않아서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앞서 올라가던 등산객은 출입통제 구역인 줄 알고 문앞에서 발길을 돌린다.
'스님들의 수행 분위기를 위해 참배객 외에는 출입을 차단한다'는 사찰 측의 의도가 맞아떨어진 셈이다.
호젓한 산길을 한참 올라서야 상원사가 나온다.
가파른 산중턱의 넓지 않은 터에 자리 잡은 통일신라기(913건 창건)고찰이다.
당우라야 대웅전과 요사채인 제월당과 청운당,삼성각 등으로 단촐하다.
이 작은 절에서 선원을 어떻게 운영할까 싶을 정도다.
용문선원은 제월당 옆의 작은 둔덕 너머에 있다.
'선원,출입금지'라는 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새로 지은 듯한 황토벽 건물이 산뜻하다.
황토벽 건물 옆 계단을 따라 다시 오르면 파란 잔디밭 끝에 자리잡은 목조건축 한 채,선방 건물이다.
'용문선원' 편액은 지난해 입적한 백양사 방장 서옹 스님의 말년 글씨다.
용이 구름을 타고 오르는 듯 글씨가 살아 있다.
선방은 고요하다.
해제철인데다 이날 저녁부터 사흘간 '간화선 수행 지침서' 발간을 위한 회의를 선방에서 열 예정이어서 수좌들이 자리를 비웠다.
아무도 없는 선방 문을 열고 들어서자 지난 여름 정진했던 수행자들의 명단이 적힌 용상방(龍象榜·소임분담표)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조실 월운해룡,선덕 성재,선원장 의정,한주 의광….비록 선방은 비었으나 용상방을 보는 것만으로도 생사를 걸고 수행했을 수좌들의 모습이 떠오르는 듯하다.
선방에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일망무제(一望無際),첩첩의 산들이 아득하게 퍼져 나간다.
산의 끝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과 맞닿아 있다.
이 깊은 산 속에 누가 이런 수행도량을 세웠을까.
"상원사는 통일신라 때 세운 절인데 고려시대부터 선원이 있었어요.
윤필암이 상선원,상원암이 하선원이었답니다.
태고보우 국사(1301∼1382)가 수행한 곳으로 유명하지요.
조선시대에는 태조의 왕사였던 무학 대사가 왕사를 내놓고 이곳에서 수도했고 1462년 세조가 이곳에 참배하러 왔을 때에는 법당인 담화전 상공의 구름 위에 백의관음(白衣觀音)이 나타났다고 전해져 옵니다."
선원장 의정(義正·57)스님의 설명이다.
그러나 일제 때 의병들이 진주하면서 일본군에 의해 절이 불탔고 한국전쟁 때 또다시 전소되면서 선원의 명맥이 끊어졌다가 2001년 4월 용문선원이 문을 열면서 선원의 전통을 다시 잇고 있다.
용문선원은 터와 산세에 맞게 크지도 작지도 않게 지은 것이 특징.14명 가량이 정진할 수 있는 27평 규모다.
선방 아래채에는 연로하거나 몸이 아픈 사람을 위해 6개의 방을 마련했다.
"용문산의 암석엔 옥(玉)이 많이 섞여 있습니다.
그래선지 산이 힘있고 정기가 맑아 용문선원은 수행하기에 참 좋은 곳입니다.
선원의 규모는 작지만 청규가 엄하고 공부꾼이 많은 선원이라고들 해요.
입방 원서를 쓸 때 짬지게 공부할 수 있는 사람만 오도록 합니다."
용문선원에서는 다른 선원처럼 하루 10시간 정진이 기본이지만 14∼16시간씩 정진하는 사람이 많다.
또 결제 중에는 산문 밖 출입이 엄격히 금지되고 정진을 각자 사정에 맡기는 자유정진도 일절 없다고 의정 스님은 설명한다.
의정 스님은 봉선사 전 조실 운경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30년 가량을 선방에서 수행하며 수좌계의 존경을 받아온 선승이다.
대학 재학 중이던 스물 넷에 출가해 강원을 마친 직후부터 전국의 선방을 섭렵했다고 한다.
요즘은 '간화선 위기론'에 맞서 '간화선 수행 지침서' 편찬 작업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한국 불교는 간화선이 중심인데 최근 남방불교의 수행법인 위파사나와 티베트 수행법,염불선,각종 명상법 등이 널리 보급되면서 간화선 위기론이 나오는 상황입니다.
반면 간화선의 수행법을 설명한 서장(書狀)이나 선경어(禪警語) 몽산법어(夢山法語) 등은 한문으로 돼 있어 신자는 물론 스님들에게도 어렵거든요.
그래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행 지침서를 만들고 있습니다."
간화선이 너무 어렵고 수행의 결과가 더디게 나타난다는 지적에 대해 의정 스님의 반응은 단호하다.
간화선은 최상승선이므로 범상한 생각으로는 할 수 없다는 것.점차 이뤄나가는 게 아니기 때문에 간절한 발심 없이는 어려울 수밖에 없는 수행법이라고 설명한다.
"간화선은 중생에서 부처로 옮겨가는 게 아니라 본래 내가 부처임을 믿고 확인하는 것입니다.
'화엄경'에서도 '심불급중생 시삼무차별(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마음이나 중생이나 또는 부처나 모두가 다 같다는 것이죠."
의정 스님은 합리주의를 위주로 한 현대식 교육은 도(道)와 거리가 멀다며 "간절한 발심만 되면 이 공부는 쉽다"고 했다.
세상 사는 일에도 간절함이 필요한 것 아닐까.
공부든 사업이든 목표가 뚜렷하고 마음이 간절해야 이뤄지는 것이니까.
선의 세계에서 속세에 던지는 가르침인 듯싶다.
양평=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