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신화'를 꿈꾸며 혈혈단신 호주 유학을 떠났던 청년이 전세계 6개국 9개 기업의 최고경영자로 우뚝 올라서 '청년 실업시대'의 귀감이 되고 있다.


주인공은 '인케(INKE·한민족 글로벌 벤처 네크워크) 2004' 행사에 참가한 김만기 SMI그룹 회장(44).그의 인생 역정 자체가 흡사 '벤처' 같다.


김 회장은 지난 89년 무일푼으로 호주 유학길에 올라 '주경야독'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아르바이트로는 학비 조달에 한계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 터.


학비를 벌기 위해 오퍼상을 차렸다.


호주의 원자재를 한국에 수출하고 한국의 면사를 수입하는 단순한 무역이었다.


집을 사무실 삼았다.


그 경험을 살려 90년엔 'SMI텍스타일'이란 간판을 정식으로 내걸었다.


그의 첫 회사다.


2년 뒤에는 한국의 대원전선 등 전선업체로부터 물품을 수입해 호주에 공급하는 SMI케이블을 차렸다.


이렇게 하나둘씩 만들어간 게 지금은 미국 3개,호주 2개,아랍에미리트 이라크 이집트 한국에 각각 1개 등 총 9개 회사를 거느리게 됐다.


지난해 전세계 8백여명의 직원이 약 1천억원(약 8천7백만달러)의 매출을 올렸다고 김 회장은 전했다.


업종도 보안시스템 구축,포털사이트 제작,대규모 목화농장 등 다양하다.


김 회장은 '불도저'처럼 사업을 밀어붙인다.


지난해 미국 국방부 국가재난방지센터 프로젝트를 따낸 게 대표적인 사례.이 프로젝트는 워싱턴DC에 위치한 공항,주요 회의장 등 사람들이 밀집하는 장소에 센서가 첨부돼 있는 특수카메라를 포함,운영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으로 외국기업이 수주하리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못한 것이다.


그것을 김 회장은 해냈다.


미국에 자본금 7백만달러 규모의 회사를 차린 것은 2001년.김 회장은 "인구 2천만명인 호주에선 성장의 한계를 느꼈다"고 미국 진출 배경을 회고했다.


그는 미국에 회사를 차린 뒤 바닥부터 다진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현지 기업들을 찾아가 영업에 나섰지만 그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미국 워싱턴 조지타운대에서 대학원을 수료하고 교회활동을 하는 등 워싱턴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현지 사람들을 모르고 사업에 성공하길 바라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죠.2년 동안 열심히 인맥을 쌓았습니다."


김 회장의 사업은 이제 본 궤도에 올라섰다.


미 국방부의 프로젝트를 수주한 뒤 세계 곳곳으로부터 보안 시스템 발주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인맥이 중요하지만 품질은 더 중요하다"며 "해외 진출을 꿈꾸는 국내 기업인들도 자신만의 특화된 기술을 일궈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임상택·사진=허문찬 기자 lim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