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들이 자동차 사이를 곡예하듯 질주한다. 횡단보도 신호등은 드물고 길에선 자주 오줌 냄새가 나지만 보도는 널찍하고 가로수는 무성하다. 베트남전의 참상을 돌아보려는 국내외 사람들이 전쟁기념관 앞에 줄을 서는 가운데,아침 6∼7시면 수많은 이들이 사이공강을 가로지르는 페리호를 타고 출근한다. 사이공으로 알려진 호치민(胡志明)시의 모습이다. 사이공은 1859년 프랑스에 의해 점령당한 뒤 메콩강 삼각주의 쌀과 북서부의 고무 수출을 위한 하항(河港)으로 발전했다. 1954년 7월 북위 17도를 경계로 베트남이 분단된 뒤 월남의 수도가 됐다 베트남전이 끝난 다음해인 76년 호치민 특별시로 바뀌었다. 86년부터 도이모이(쇄신)정책이 실시되면서 개방된 이곳엔 지금 한국 바람이 거세다. 거리엔 ○○학원 등 한글이 새겨진 버스가 수두룩하고,외곽엔 태광비나(나이키)와 화승(리복),성현비나(이탈리아의 제옥스) 등 세계 유명브랜드의 주문자 생산을 맡고 있는 신발업체와 삼성 LG 등 국내 유수업체 공장이 가득하다. 비나는 '베트남'의 약어.공장에선 월급으로 팔찌 등을 사모았다 명절이면 고향집에 풀어놓고 온다는 스무살 안팎의 젊은 여성들이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고,인근엔 이들을 겨냥한 사진관과 파티용 드레스 가게가 줄을 섰다. 정부가 1백% 외국인 단독투자 허용을 확대하면서 경제도시 호치민은 하루가 다르게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도로와 통신시설 등 인프라가 확충되는 가운데 기업은 늘어나고,고층빌딩 건설로 스카이라인은 바뀌고,주거 환경 또한 빠르게 개선된다. 이런 변화에 한국의 힘이 크다고 여겼을까. 호치민시는 9월15일을 '부산 데이'로 선포했다. 95년부터 자매결연을 맺어온 부산과 좀더 긴밀하게 협력,호치민의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하노이에 이어 한국 대통령으론 처음 호치민을 방문한다. 베트남 사람의 경우 '태국 상인 셋이 베트남 농부 한사람을 못당한다'고 할 만큼 부지런하다지만 호치민의 변화는 1만달러 늪에 빠져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대통령의 호치민 방문이 모쪼록 현지 국내기업에 큰 힘을 불어넣기를 기대한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