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첫 국정감사가 궤도를 이탈하고 있다. 여야가 기밀유출과 교과서 편향 등 이념문제를 놓고 극단적인 대결로 치달으면서 국정감사가 초반에 반짝 선보였던 정책감사 양상은 사라지고 극단적인 정쟁의 장으로 전락하고 있다. 자연 국감전에 여야가 거창하게 내걸었던 정책국감이 헛구호에 그치는 등 구태를 되풀이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멀어지는 정책국감=최대 논란거리로 등장한 국방위의 군사기밀 유출 시비나 교육위의 근·현대사 편파성 공방은 여야가 국감 전 몇달 동안 벌여온 이념논쟁의 '제2라운드'성격을 띠고 있다. 7일 정무위의 좌파인사들에 대한 서훈 논쟁도 이의 연장선상에 있다. 건교위의 행정수도 이전공방과 행자위의 '관제데모'시비도 여야간 힘겨루기에 다름 아니다. 이런 여야 정쟁 속에 국감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벌써 일부 상임위는 정회소동을 빚는 등 파행을 겪었고 교육위는 교과서 공방으로 사립학교법 개정문제 등 주요 현안은 뒷전으로 밀렸다. 6일 행자위의 서울시 국감에서도 '관제데모'시비에 시간을 허비하느라 다른 정책사안은 제대로 짚지도 못했다. ◆격화되는 여야 감정싸움=열린우리당은 7일 군사기밀 유출 등에 대해 한나라당 지도부의 대국민 사과를 요구했고 한나라당은 "신 공안정국을 조성하려는 선전포고"라며 정면 대응하고 나섰다.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은 이날 부산을 방문,기자간담회를 갖고 "야당의원들의 국가기밀 폭로는 용납할 수 없다"며 "법적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종걸 원내수석부대표는 "한나라당의 국정감사 대책 회의자료에는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를 급진좌파로 공격해 정부를 곤경에 빠뜨리려는 내용이 명백히 나와있다"고 비난했다. 이에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국감 대책회의에서 "야당이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의무이고 당연한 일로 흔들리지 말라"고 독려한 뒤 교과서 문제에 대한 당내 특위 구성을 통한 사실 규명을 지시했다. 국방위 소속 한나라당 박진,황진하,권경석,박세환 의원은 이날 발표한 '한나라당 입장'에서 "열린우리당 안영근 의원의 스파이 발언과 관련,당사자 사과와 국회 속기록 삭제가 수용되지 않는다면 열린우리당이 국정감사를 정상적으로 추진할 의도가 없다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강력히 반발,국감이 중단됐다. 이에 앞서 열린우리당 안영근 의원은 이날 한나라당 박진 의원을 겨냥,"언론 플레이 자체가 대한민국 안보에 큰 위협을 주고 있는데 그것이 스파이지 뭐가 스파이냐.같이 못하겠다"고 말했다. 기밀 유출 파문의 당사자인 박진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질의 전에 그 내용을 국방부에 제출했는데도 아무런 이의제기가 없었다"며 "여당의 '스파이 행위'운운은 성실한 의정활동을 탄압하기 위한 정략적 의도"라고 비판했다. 이재창·홍영식 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