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7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콜금리를 동결하자 채권시장은 사실상 공황(恐慌)상태로 내몰렸다. 예상치 못한 동결 결정에 손절매물이 쏟아져 국고채 3년물 금리는 하루새 0.17%포인트나 급등(채권값 급락)했다. 한은이 밝힌 콜금리 동결 배경은 시장충격의 강도를 더욱 증폭시켰다. 박승 한은 총재는 "(금리인하를 시사하는) 재정경제부만 바라보고 투자한 철없는 시장은 학습효과를 얻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장에선 이 같은 발언이 향후 콜금리 추가인하 가능성마저 배제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번 콜금리 동결은 한은이 스스로 금리정책이 사실상 효과 없음을 인정한 셈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철없는 시장'에 대한 경고 박 총재는 이날 콜금리 동결 뒤 기자들과 가진 오찬에서 채권시장에 대한 불만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그는 "한은이 채권시장을 따라갈 수는 없다"며 "재경부 말만 믿고 베팅했다 한두 번 손해봐야 반성하고 훈련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재경부 당국자들의 금리인하 시사 발언에 솔깃해 과도한 채권 매수로 금리를 폭락시킨 것을 시장이 한은을 굴복시키려는 의도로 해석한 것이다. 박 총재는 또 "정부 당국자의 발언은 참고사항일 뿐이며 그 때문에 금통위 의사결정을 바꾸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못박았다. '콜금리는 금통위가 결정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재경부에 전달한 셈이다. 이 같은 재경부와 한은의 금리정책을 둘러싼 마찰에 대해 시장 일각에선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질 판"이라는 반발도 나오고 있다. ◆시장은 패닉상태 한은의 콜금리 동결소식이 전해진 오전 11시30분께 국고채 3년물은 0.06%포인트 오른 연 3.52%선에 거래됐다. 전날 이미 금리가 반등,콜금리 동결시 투자위험을 줄여놨기 때문에 큰 충격은 없는 듯했다. 그러나 오후 들어 분위기가 급반전했다. 박 총재의 시장에 대한 불신과 추가금리 인하 가능성을 배제하는 듯한 발언이 전해진 오후 2시께 국고채 금리는 연 3.68%까지 뛰었다. 국고채 3년물은 결국 0.17%포인트 오른 연 3.63%에 마감했다. 국고채에 1백억원을 투자한 기관은 이날만 4천8백만원을 손해본 셈이다. 국고채 1백억원어치를 1년간 보유해도 연간 이자가 4억원에 못 미치므로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최근 국고채 매집에 나섰던 일부 외국계 은행들의 피해가 컸고,증권 투신사의 채권형 펀드도 채권 편입비율이 높을수록 기준가격이 크게 떨어져 수익률 면에서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시장에선 박 총재의 '폭탄 발언'에 대해 아쉽다는 반응이다. 최석원 한화증권 채권분석팀장은 "자금유출이나 부동산 버블문제,경기인식 등이 8월에 비해 전혀 변화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동결 이유로 설명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며 "특히 국고채 10년물 금리처럼 잠재성장 가능성을 나타내는 금리를 충격으로 조정하려는 듯한 인상은 신뢰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 일각에선 "시장이 철없는지,한은 총재가 철없는지 모르겠다"는 비아냥도 쏟아졌다. ◆금리인하 정책 실패 자인 박 총재는 지난 8월 콜금리 인하와 관련,"금리 인하를 통해 시장에 풀린 유동자금이 투자로 연결돼야 하지만 현실은 채권과 주식시장으로 흘러들어 시장금리 폭락,주가 급등이라는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당시 기대했던 기업과 가계의 이자부담 경감을 통한 투자 및 내수회복이라는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졌음을 자인한 셈이다. 박 총재는 또 "올해 물가가 한은 중기목표(2.5∼3.5%)의 상한선인 3.5%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물가를 책임져야 하는 한은 입장에서 콜금리보다 물가가 더 높아지는 상황을 용인하기 어려웠다는 얘기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