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제품의 내수-수출가격이 역전된 틈을 타 일부 중소가공업체들이 유화업체들로부터 사들인 제품을 가공하지 않은 채 저가에 재수출하고 있어 해외 시장에 교란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SK㈜ LG화학 호남석유화학 한화석유화학 등은 일부 수요업체의 재수출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내달부터 폴리에틸렌(PE) 가격을 t당 1백60만원으로 20만원 인상키로 하는 등 제품 가격을 대폭 인상키로 했다.


그러나 재수출과는 관계없는 실수요 업체들은 "안 그래도 원가 부담을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서 원료가격이 급등하면 문을 닫는 수밖에 없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결과가 주목된다.


◆왜 이런 현상 생겼나


주범은 유화제품의 내수-수출가격이 역전됐기 때문이다.


유화제품 수출가는 국제 유가가 폭등하고 있는 와중에 중국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천정 부지로 치솟고 있다.


반면 내수가격은 불황이 장기화되고 있는 데다 수요업체에 원가 인상분을 전량 전가하기도 어려워 인상폭이 수출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았다.


코팅 및 사출용으로 쓰이는 저밀도폴리에틸렌(LDPE)의 경우 국내에서 t당 1백40만원선에 거래되고 있지만 중국에 수출하면 1백63만원을 받을 수 있다.


수출 가격은 작년말 t당 97만원보다 68%나 뛴 것이다.


내수가격은 t당 40만원 올랐지만 인상폭(40%)은 수출가보다 훨씬 작다.


필름 등 플라스틱 원료인 고밀도폴리에틸렌(HDPE)도 작년말까지는 내수-수출가격이 비슷했으나 지금은 t당 10만원 이상 가격차이가 난다.


◆가공업체 원료 재수출


한화석유화학 관계자는 "거래업체 중 2개 업체가 우리 회사로부터 구입한 폴리에틸렌(PE)을 재수출하는 사실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그는 "올해 경기침체에도 내수 출하가 5% 정도 늘었다"며 "편법적인 재수출 물량이 그만큼 많았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경기도 안산의 가공업체 A사의 관계자는 "공장을 돌려서는 거의 이익이 남지 않는 반면 중국에 원료를 재수출하면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다"며 "내수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재수출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프라스틱공업협동조합연합회 임원도 "국내 플라스틱업계의 경영난이 계속되고 있어 일부 업체에서 고육지책으로 기초원료를 역수출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고 사실을 확인했다.


◆"인상한다" "안된다"


유화업계는 내달 대대적인 가격 인상에 나설 계획이다.


재수출 사례를 수출 상대국이 알 경우 수출가격과 내수가격의 차이가 있다는 점을 들어 통상 문제를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한 관계자는 "원래 국제가격에 관세와 부대비용,프리미엄 등을 감안하면 국내 가격이 수출 가격보다 10% 이상 높아야 정상"이라며 "다음달에 저밀도폴리에틸렌(LDPE)은 t당 20만원(14.3%) 정도,선형저밀도폴리에틸렌(LLDPE)은 10만원(9.0%) 정도 올릴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실수요 업체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박용태 프라스틱공업협동조합연합회 전무는 "편법수출 지적을 받고 있는 곳은 중국현지에 공장을 가지고 있는 극소수 업체에 불과하다"며 "일부 업체들의 사례를 일반화시켜 가격을 대폭 인상할 경우 불황에 시달리는 실수요 업체들은 더 이상 버텨낼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