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독약을 뿌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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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경제는 자살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겠다.
아니면 독살인지도 모르겠다.
독약을 주입하는 자들이 분명 있다.
정부 여당이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법제화를 서두르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그렇고 수백조원의 금융자산을 불임(不姙)화해놓고 있는 수년간의 금융정책이 그렇고 IMF 이후 귀가 따갑도록 들어야했던 소위 기업지배구조 개혁론들이 모두 독약들이다.
이 독극물 속에는 주자학적 취향을 충족시켜주는 시안화나트륨 같은 성분들이 다량 함유돼 있다.
재벌의 부당한 팽창을 저지하고 은행산업을 정상화하며 대주주의 전횡을 제어한다는 명분들이 개혁법안들을 제안하고 추진하는 자들이 내뿜는 '합리주의'라는 이름의 독극물이다.
문제는,그것이 초래하는 사이드 이펙트다.
만일 그 결과가 무덤의 평화일 뿐이며 주자학의 유령을 덧씌워 놓는 것이라면 만사는 도로아미타불이다.
그것은 조선(朝鮮)을 명분사회로 만들어간 원리주의와 다를 것이 없다.
제사상 문제로 당파를 나누는 것과 출자총액규제를 놓고 파당을 짓는 것이 결국은 낡은 반복이라는 것을 우리의 개혁론자들은 언제쯤 깨닫게 될 것인가.
이정우 위원장이 스스로를 조광조 개혁에 비기는 것은 또 얼마나 절묘한가.
그런 과정을 거쳐 경제의 양대축인 금융과 산업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산업분야는 소위 재무제표 감식가들에 의해 장악돼가고 있다.
이들은 기업내 관료세력이라고 불러 마땅하다.
그들의 뿌리는 미국의 경영대학이지만 정작 미국에선 이미 관리형 경영자 시대의 종언이 선언되고 있다.
주자학도 그렇고 기독교도 그렇고 무엇이든 한국에만 왔다하면 원리주의가 되고마는 것도 미스터리다.
어떻든 여기에 소액주주와 기관투자가와 최근에는 노동조합까지 뛰어들어 기업경영은 어느덧 정치 과정이 되고 말았다.
위험투자는 원천 봉쇄되고 '경영은 곧 재무관리'라는 등식이 성립되면서 기업은 빛을 잃고 있다.
기업은 조건을 충족시키는 존재가 아니라 낡은 조건을 깨는 존재다.
'할 수 없는 것'에 도전하지 않는다면 이미 기업도 아닌 것이다.
지금 우리는 이 기업도 아닌 기업을 지배구조의 모델로 만들어 내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는 중이다.
사실 기업이 언제고 합리적이었던 때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합리적 투자? 그것으로는 결코 개펄에 제철소를 지을 수 없고 반도체공장을 지을 수 없고 하물며 자동차라니….산업과 더불어 동전의 앞뒷면을 이루고 있는 금융도 마찬가지다.
외환 위기 이후 은행에 자금을 몰아주고 그 소유권을 외국인에게 넘기고,지금에 와서 하는 일이란 고리대금업과 다를 것이 없게 되고 말았다.
오직 정부 면장을 밑천으로 고액의 통과세(수수료)를 떼먹는 것은 또 어떻고.(전매 사업자들이 관치금융을 비난하는 것은 정말 볼 만하다)
반면에 위험을 먹고사는 자본시장은 외환위기 이후 합리주의의 십자가에 못박힌지 오래다.
그러니 아무리 돈을 풀어도 전부 은행으로 되돌아와 썩은 곰팡내를 풍기며 엎드려 있다.
산업과 금융 양대 방면에서 오로지 '안전하게' '합리적으로'가 모토가 된지 오래다.
바로 그것이 우리시대의 독약이다.
바보들은 언제나 '합리적이면서 동시에 활력이 넘치는' 그런 사회를 주창하지만 그것은 코끼리의 다리와 호랑이의 이빨처럼 다른 것이고 또 결합 불가능하다.
서툰 이상론과 가짜 합리주의가 정치를 얻었으니 결과는 뻔하다.
기업경영은 우리의 삶이 그런 것처럼 모순에 가득찬 것이다.
그 생동하는 모순을 죽은 화석으로 만들지 말라.
정규재 편집국 부국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