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2 11:38
수정2006.04.02 11:41
연세대 고려대 이화여대 등 일부 사립대의 고교등급제 시행사실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이 같은 문제가 불거진 근본적인 원인이 고교평준화에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전문가들은 "평준화제도가 고교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오히려 사교육의 원인이 되는데다 학력이 높은 고등학생들에게 역차별을 불러일으키는 등 부작용이 심각하다"며 "고교 평준화제도를 대폭 수정할 시점이 됐다"고 주장한다.
◆평준화가 교육경쟁력 끌어내려=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교육개혁포럼과 공동으로 발간한 논문집에서 고교평준화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했다.
이 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학교에서 학생을 열심히 가르치고자 하는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는 것.적당히 '중간'만 해도 학생을 뽑고 교육비를 지원받는 데 문제가 없다 보니 학생의 학력을 올리고 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주력하지 않는다.
이 같은 정보가 일반에 공개되는 일이 없으니 학생과 학부모에게 항의를 받을 일도 없다.
수요자인 학생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학력과 특성이 다른 학생들을 한꺼번에 몰아놓고 수업을 하다 보니 학생들도 쉽게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수준별 학습이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있지만 일괄적인 평가를 하기 때문에 학생들을 자극하지 못한다.
이 같은 문제점은 전반적인 학생의 수준이 떨어지는 하향평준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의 진단이다.
우천식 KDI 산업·기업 경제부장은 "교육은 근본적으로 배타적이고 경쟁적이기 때문에 공공재가 될 수 없다"며 "현행 평준화 제도 하에서는 고등학교 교육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고비용 부르는 평준화제도=지난 75년 처음 고교평준화 제도가 도입될 때까지만 해도 평준화 제도의 목적은 지나치게 과열된 사교육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평준화 제도가 자리잡으면서 자신의 수준에 맞는 교육을 받을 수 없게 된 학생들이 다시 사교육 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안양 백영고등학교의 문숭봉 교사는 "반 아이들 중 학원에 다니지 않는 학생은 아무도 없다"며 "학생을 제대로 지도하기 힘든 평준화 제도가 사교육비를 줄인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말했다.
최근 불고있는 조기교육도 평준화 제도 탓이 크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3백50개 회원사 인사담당 임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자녀를 유학 보냈다는 응답자 중 절반이 대학 이전인 초·중등학생 때 보낸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우리나라의 교육제도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이 높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립학교는 평준화에서 제외해야=현재 전국 고등학생 중 평준화고에 다니는 학생은 60% 정도.2000년 기준으로 17개 시 8백18개 고등학교가 평준화 고등학교며,총 1백37만명 정도의 학생들이 이 곳에 다닌다.
하지만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학교들도 사실상 평준화 제도 하에 묶여있다.
지방 비평준화지역 고교의 경우 학생 선발권만을 갖고 있을 뿐이다.
최근 관심을 모으고 있는 자립형 사립고도 등록금을 일반 고등학교의 2∼3배 이상 받을 수 없는 등 제한이 많아 사실상의 평준화고교로 봐야 한다.
전문가들은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수준높은 사립고교만이라도 평준화라는 '굴레'에서 자유롭게 해줘야 한다고 지적한다.
위스콘신 밀워키대학의 김선웅 교수는 "교원임용,학생선발,등록금,교육과정 결정이 자유로운 사립고교를 많이 만들어 교육의 다양성을 꾀하고 이를 대학입시에도 적용해야 한다"며 "평준화의 장점인 전반적인 교육의 질 향상은 공립고에서,교육의 다양성은 사립고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