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의 서울 자양지국장 조임선씨(43)는 사회생활을 신문배달맨으로 시작했다. 인천이 고향인 그는 중학교를 졸업한 79년 봄 단신으로 서울에 왔다. 스스로 돈을 벌어 공부를 계속 하기 위해서다. 그가 취직한 곳은 광화문 한경지국. 신문배달을 하면 돈도 벌고 지국에서 공부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아침마다 '눈썹이 휘날리도록' 열심히 뛰었다. 서슬 퍼던 80년대 초반 청와대에도 신문을 배달했다. "청와대에 들어갈때 떨리지는 않았지만 '수위선생'이 그렇게 어려울 수 없었어요. 그래서인지 지금도 어떤 사무실을 방문할 땐 습관적으로 건물 입구에서 옷 매무새를 고치고 '수위선생'께 고개를 숙입니다. 그 때 겸손도 배웠지요." 이렇게 배운 성실과 겸손은 그에게 결실을 가져다주기 시작했다. 생활이 안정되면서 83년에 고등학교 검정고시에,89년에는 방송통신대에 합격했다. 그는 특히 94년을 잊을 수 없다고 회고한다. 한경 광화문지국을 넘겨 받았기 때문이다. 전임 지국장이 별로 내세울 것 없는 자신을 믿고 보증까지 서줬다. 그야말로 '사람' 하나만 보고 자리를 내준 것이다. 신문배달맨에서 관리자로 신분이 바뀌었지만 몸에 밴 성실과 겸손은 여전했다. 자연히 일이 몰렸다. 서울지역 가판신문을 관리하는 일에 나선데 이어 한국경제신문 자양지국장까지 맡게 된 것도 그때다. 한창 때인 97년에는 신문관리로 얻는 수입원이 13군데나 됐다. '신문밥' 20년중 절반을 한경과 함께 한 조 지국장은 지금 집 한채와 개인 사무실을 갖고 있다. 돈 벌고 공부도 하겠다는 그의 꿈이 어느 정도 이뤄진 셈이다. 그는 주변친지들과 친구들 사이에서 경제전문가로 통한다. 틈나는 대로 한경을 꾸준히 읽어 온 덕택이다. 요즘도 그는 한경 1면과 증권 부동산면 등은 빼놓지 않고 챙겨본다. "10년 넘게 한경을 읽다보니 웬만한 경제흐름은 짚을 수 있는 눈이 생겼습니다. 경기가 좋다는 기사가 실리면 마음이 가볍지만,불경기로 살기 어렵다는 기사가 담긴 신문을 배달할 땐 발걸음도 무겁지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조 지국장의 하루는 변함없이 새벽1시에 시작된다. 새벽마다 지국으로 출근,오전 7시30분까지 한경을 배달한다. 조 지국장 같은 성실한 배달맨의 발을 타고 한경은 아침마다 독자들의 식탁에 올라간다. "한경 창립 40주년을 누구보다 더 축하한다"는 조 지국장은 또 내일 새벽을 기다린다. 정인설 사회부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