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경제학상 수상자 특별강연] 정기준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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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회 다산경제학상을 수상한 정기준(鄭基俊·63)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 30여년간 계량경제학 연구에 매진해온 국내 계량경제학계의 개척자다.
정 교수는 세계 각 대학에서 계량경제학 교과서로 가장 널리 채택되고 있는 A.C.창의 '수리경제학의 기초원리'를 국내에 처음 소개했다.
또 그가 쓴 '미시경제이론'은 폴 새뮤얼슨 등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오류를 정확하게 지적,교과서가 아닌 연구서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정 교수가 경제현상을 설명할 때 가장 강조하는 것은 이기심이다.
그가 제기하는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의 요지도 "인간의 이기심을 부정하려 든다"는 것이다.
특히 "노동자들에게 양식을 요구하거나 기업가들에게 애국심을 요구해서는 경제가 발전하기 힘들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따라서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제도는 이기심을 억제하는 제도가 아니라 아름다운 이기심이 꽃피는 제도"라고 강조한다.
정 교수의 특별 강연 내용을 정리한다.
◆이기적 유전자론
계량경제학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실학과 맥이 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1930년대 기존 경제학이 실학의 구실을 못할 때 실제의 경제통계자료를 경제이론과 결합해 사실로부터 진실을 찾자는 운동으로 시작된 학문이 바로 계량경제학이다.
문자 그대로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지향한다.
계량경제학이 현대경제학의 주류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실사구시와 더불어 현대경제학의 근간이 되는 원리가 바로 인간의 이기심이다.
이런 면에서 경제학자들은 생물학자들의 학문적 성과로부터도 깊은 영감을 받아왔다.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가 대표적이다.
'종의 기원'의 현대판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생물학 책인 동시에 경제학 책이다.
이 책에서는 다윈의 생존투쟁 대신에 유전자의 이기성을 키워드로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유전자는 자기 자신의 생존 가치를 높이려는 경향을 가진 존재라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전제다.
사람은 그 유전자들의 생존가치를 높이기 위해 행동하고 생각하는 '로봇'과 같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주인인 유전자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이기적인 행동은 물론 이타적인 행동도 할 수 있다.
◆이기주의의 명암
사람들은 이기주의에 대해 별로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은 이기성을 버리기 어려워하면서도 남은 이기성을 버려주기를 바라는 모순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기주의는 부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긍정적 측면도 있다는 것을 강조한 사람도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아담 스미스와 찰스 다윈이다.
스미스는 이기적인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가 정부의 간섭 없이도 '보이지 않는 손',즉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사회의 공동선을 이룩할 수 있음을 주장했고,현대 경제학자들은 이 명제가 타당하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가를 탐구했다.
다윈은 생명의 본질이 생존투쟁에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투쟁이 자연선택,즉 자연의 경제적 과정을 통해 고등동물이라는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는 것에 경탄했다.
◆경제학은 이기성의 학문
경제학은 기본적으로 이기성의 학문이다.
경제주체로 상정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이기성의 화신'이다.
경제학을 공부하는 고학년생들에게 "너희가 배운 경제학은 모두 기본적으로 인간의 이기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말해주면 일단 놀라는 기색을 보인다.
그러나 "너희가 배운 경제학 내용 중에 인간의 이기성과 관련되지 않은 부분이 있으면 말해보라"고 하면 그제서야 수긍한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생명경제학도 마찬가지다.
다윈이 생존투쟁을 통해 생명체의 진화를 설명했듯이 생명경제학은 생명의 본질로서의 이기성을 핵심 고리로 경제현상을 설명한다.
그리고 생물학과 게임이론의 성과를 적극 수용해 이기성이 가지는 긍정적 측면을 강조한다.
즉 경제학을 꿰고 있는 '이기성의 실'을 새로운 튼튼한 실로 바꿔보려는 것이다.
◆아름다운 이기심이 꽃피는 사회 돼야
생물학의 최근 성과에 의하면 생명의 이기적 본질은 동서고금의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생명경제학은 이 진실을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생명경제학에서는 인간 개조니,윤리적 각성의 촉구니 하는 수사적 표현을 믿지 않는다.
이런 운동이 필요없다거나 해서 안된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그런 캠페인이 성공할 수 있다면 더 없이 좋은 일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런 목표를 가진 행동이나 정책은 성공하기 힘들다.
평등주의적 교육개혁은 개인의 자기향상 의욕을 부인해야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생명경제학은 이런 이기심을 부인하지 못한다.
경제는 노동자의 양식이나 기업가의 애국심에 호소해서는 발전하기 힘들다.
우리가 누리는 높은 문명 수준은 아름다운 이타심의 산물일까,아니면 추한 이기심의 산물일까.
우리가 누리는 풍요는 협력하는 아름다운 이기심의 산물이다.
생명경제학은 아름다운 이기심을 연구한다.
우리가 지향하는 제도는 이기심을 억제하는 제도가 아니라 아름다운 이기심이 꽃피는 제도다.
한 나라의 경제 운용도 이러한 원리를 근간으로 해야 성공할 수 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정리=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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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1941년 2월 2일 충남 출생
△1964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1966년 서울대학교 경제학 석사
△1976년 미국 클레어몬트대학 경제학 박사
△1975년∼현재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1986∼89년 한국계량경제학회 초대 사무국장
△1989∼91년 세계계량경제학회 극동대회 프로그램위원장
△1991∼93년 서울대학교 경제연구소 소장
△1992∼94년 한국계량경제학회 회장
■ 논문 및 저서
△시계열 상관관계 검정을 위한 더빈-왓슨 모형의 핵심에 대한 새로운 추정(1985년 이코노메트리카)
△미시경제이론(경문사 1986년)
△투입산출분석의 호킨스-사이몬조건:그 재해석과 새로운 전개(1991년 경제논집 제30권)
△일본의 국내 수요조건과 국가경쟁력(1994년 서울대학교 세계경제연구소)
△경제인,유전자 이기성,그리고 이타적 행동의 기초로서의 근친도통합(1996년 경제논집 제35권)
△계량과 진실(2003년 서울대)
△경제전략과 계량의식(2004년 서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