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추상조각의 개척자였던 조각가 김종영(1915~82)은 생전에 충남 예산의 추사고택을 찾아 영정 앞에 절을 올릴 정도로 완당(추사 김정희)을 흠모했다. 조각가이면서 서예작품을 많이 남긴 것도 완당글씨의 예술성을 '리듬의 미'가 아니라 '구조의 미'에 있다고 파악했기 때문이다.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문자향(文字香)'전은 서예를 통해 김종영이 추구했던 조형세계를 이해하고,이 시대 조각가들이 문자향의 정신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살펴보는 기획전이다. 김종영의 서예작품 10여점과 드로잉 14점,조각 5점이 전시되고 김영대 김종구 노주환 정광호 최인수 등 젊은 조각가 5인의 신작들이 출품됐다. 김종영의 서예작품으로 '한산(寒山)' '애련설' 등이 나왔다. 전시에 초대된 작가들은 문자를 조형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최인수의 '북한산' '들고 나고'는 스테인리스 스틸을 이용한 선(線)을 통해 문자에서 볼 수 있는 추상적 형상을 단순화했다. 볼륨보다는 긴장과 이완의 율동이 강조된 작품이다. 쇳덩어리를 갈아 그 가루로 바닥에 글씨를 쓰고 그 영상을 벽에 비추는 김종구는 이번 전시에서 완당의 '화법서세,예서 대련(對聯)'을 재현했다. 프로젝터를 통해 벽에 투사된 형상은 물을 한껏 머금은 산수화를 떠올리게 한다. 11월28일까지.(02)3217-6484 이성구 미술전문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