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院산책] (12) 프랑스 파리 사자후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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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것을 먹고 싶고,좋은 것을 보면 더 많이 갖고 싶고,때로는 원초적 욕망이 일어날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가고자 하는 방향이 정해져 있으면 욕망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선 수행을 꾸준히 하면 깨달음을 성취하느냐에 관계 없이 수행 그 자체가 힘을 얻게 만들어요."
"그렇다면 지금 마음이 욕망으로부터 자유롭고 평화롭습니까."라고 다시 질문했다.
"(선방을 가리키며)모든 것은 여기에 있습니다. 내 마음이 평화로우면 남을 볼 때에도 평화롭지요."
지난 12일 오전 파리 시내 한복판의 리용가(街) 주거지역의 사자후(獅子吼)선원.
폴란드 출신의 우봉(54) 선사가 한국에서 찾아온 기자들의 질문에 조용히,그러나 거침없이 답하면서 선(禪)의 세계를 펴보인다.
사자후 선원은 1995년 우봉 선사가 스승인 숭산 스님에게 배운 간화선(看話禪)을 프랑스에 전파하기 위해 세운 곳.숭산 스님이 설립한 관음선종의 유럽 내 중심이다.
우봉 선사의 아파트에 모여서 참선(명상)하는 것을 시작으로 해 7년 전 현재의 자리에 선원을 꾸몄다고 한다.
큰길에서 주택가 안쪽으로 들어서면 자그마한 마당이 있고,커다란 철문에 'Assoc.Bouddhiste Zen Kwanum'(관음선종 협회)이라는 간판이 조그맣게 붙어 있다.
사자후 선원이 자리잡은 곳은 철문 안쪽 3층 건물의 1층이다.
선방 벽에는 탱화,달마도 등과 함께 한국 선불교의 중흥조인 경허 만공 스님과 숭산 스님,또 그 은사인 고봉 스님 등의 사진이 걸려 있다.
"신자로 등록한 사람이 20명 가량 되는데 매달 2∼3일씩 용맹정진을 함께 하지요.
또 여름·겨울에 3개월간 집중 수행하는 안거를 포함해 1년에 3번은 1주일씩 용맹정진에 들어갑니다.
1주일 용맹정진에는 외국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오지요.
컴퓨터 프로그래머·엔지니어,사업가,군인,정신과 의사,비밀경찰 등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동참합니다.
이들 참가자는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을 가졌다는 것이 공통점이에요."
참선 동참자들 중에는 기독교인,무슬림,유대인,마르크시스트까지 있다.
그러나 우봉 선사는 "이들이 불교 신자냐,아니냐는 중요치 않다"고 말한다.
아직은 기독교 전통이 강한 유럽에서 불교를 종교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적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종교냐를 가르는 분별보다 존재의 실상을 바로 알고 그 바탕에서 실천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 실상을 바로 아는 방법은 바로 화두를 들고 참선하는 간화선이다.
"화두는 일부러 집중하는 게 아니라 생각이 일어나기 전에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큰 의문(화두)이 있으면 굳이 생각하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숭산 스님이 주신 '나는 누구인가'를 화두로 정진하고 있습니다."
속명이 야콥 펄인 우봉 선사는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고 있지만 숭산 스님의 또다른 제자인 자미 법사(47·속명 그라지나 펄)와 결혼한 몸이다.
출가한 적도 없고,현재 스님도 아니다.
한국적 전통에서 본다면 생소하지만 숭산 스님은 이들을 각각 'zen master(선사)'와 'dharma master(지도법사)'로 인가했다.
두 사람은 유럽 전역을 누비며 한국 불교의 선을 유럽인들에게 알리고 있다.
선원장을 맡고 있는 자미 법사는 이날도 참선지도를 위해 스페인으로 떠나고 없었다.
"사자후 선원의 운영은 한국 사찰과 거의 같아요.
오전 6시에 새벽예불을 드리고 30분간 참선을 합니다.
반야심경 독송은 한국어와 불어로 하고,선원 내에선 채식을 하지요.
프랑스이기 때문에 가끔 와인도 곁들입니다."
우봉 선사가 숭산 스님을 만난 것은 지난 72년.미국 보스턴대 재학 시절 막 미국 포교를 시작한 숭산 스님을 만나 첫 제자가 됐고,숭산 스님의 아파트에서 함께 살면서 공부했다고 한다.
그 이후 프로비던스 선센터에서 계속 공부하다가 파리로 왔다.
"숭산 스님을 만나기 전에 일본 선불교와 티베트 불교를 공부했어요.
숭산 스님의 가르침은 직설적·직선적이며 단순하다는 점에서 마음을 끌었습니다.
티베트 불교는 단계적으로 나아가도록 해 매우 복잡하고 일본 불교는 종파가 나눠져 있는 반면 한국 불교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통불교라서 더욱 좋았지요."
우봉 선사는 "벨기에 독일 네덜란드 등 유럽 각국에 관음선종의 선 센터가 있다"며 "모든 선 센터들이 한국 사찰을 모델로 운영하고 있다"고 전한다.
매 안거가 끝나면 이들 선 센터의 지도자들이 모여 수행과 관련한 문제를 논의한다.
우봉 선사에 따르면 프랑스는 불교신자가 2백만명에 이를 정도로 유럽에서 가장 불교인구가 많다.
베트남 캄보디아 등의 아시아 이민자들이 많기도 하지만 티베트와 일본 불교가 많이 전파돼 있다.
하지만 유럽에서 한국 불교의 위상은 아직 미미하다.
프랑스 파리 근교에 법정 스님이 세운 송광사 파리분원인 길상사가 있지만 교민과 유학생 위주의 포교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도 벽안의 선사는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를 이해하기 위해 화두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며 "한국 불교가 유럽에서 확산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파리=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