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의 순위가 올해 11단계나 곤두박질 친 것은 최근의 국내 경제위기가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됐음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져 향후 성장잠재력 감퇴마저 우려되는 상황에서 정책 불확실성과 불안한 노사관계로 기업 활동이 크게 제약받고 있는 한국 경제의 현주소가 냉정한 평가를 받은 셈이다. ◆'비정상적 금융환경'이 문제 WEF의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 순위가 크게 떨어진 주요 요인 중 하나는 거시경제 환경지수가 낮게 평가됐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활동 중인 기업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경기후퇴 전망이 우세하고,'신용접근의 곤란' 등 애로가 쏟아져 나온 것.실제 한국의 거시경제 환경 지수는 지난해 23위에서 올해 35위로 무려 12단계가 떨어졌다. 국내 기업들이 신용접근에 대한 애로가 많다는 결과가 나온 것은 최근의 중소기업 자금난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시중 자금이 은행으로만 고이며 생산적인 기업자금으로 흐르지 않고 안전한 국채 투자 등 머니게임에만 쏠리는 비정상적인 금융시장도 국가경쟁력을 갉아먹는 요인 중 하나였다는 얘기다. ◆악화되는 체감 경영환경 기업활동의 애로사항에 대한 WEF 설문조사 결과,한국의 경우 '정책 불안정''비능률적인 관료제''경직된 노동관계법규''자금조달 어려움''세제 관련법규(Tax Regulation)' 등이 주된 문제점으로 꼽혔다. 특히 현 정부 들어 강화되고 있는 공정거래법 개정 등 대기업 '규제 드라이브'가 기업들의 체감 경영환경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분석이다. 김광두 서강대 교수는 "WEF 등의 국가경쟁력 평가에선 현지 기업들의 경영환경에 대한 설문결과가 크게 반영된다"며 "기업들이 느끼는 경영환경이 그만큼 악화됐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기업경쟁력 지수는 93개 대상국 중 지난해(23위)와 유사한 수준인 24위로 평가돼 상대적으로 '선전'했다. 기업환경과 관련,특히 경쟁력이 낮게 나타난 분야는 △모성보호 관련법률이 여성 고용에 미치는 영향(1백2위) △외국노동 고용의 용이성(99위) △입법기관의 효율성(81위) △은행의 건전성(77위) △농업정책 비용(77위) 등이었다. ◆'선택과 집중'에 해법있다 한국의 국가경쟁력이 뒷걸음질 친 반면 전통적으로 국가경쟁력이 강한 핀란드 스웨덴 등 유럽 강소국들은 여전히 높은 순위를 자랑했다. 핀란드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국가경쟁력 1위를 차지한 것을 비롯,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스위스 아이슬란드 등이 대거 10위권 내에 올라 '강소국 모델'이 다시 한번 주목을 받게 됐다. 이영선 연세대 교수는 이에 대해 "경제력 집중 완화에 신경 쓰기보다는 '선택과 집중'논리로 경쟁력 있는 기업을 키워 국부를 늘리고 국가경쟁력을 향상시키는 유럽강소국 모델의 강점이 다시한번 입증된 셈"이라며 "한국도 유럽강소국의 실용적인 기업관과 경제관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