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포럼] 부산영화제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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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문화인가 산업인가.
영화를 둘러싼 모든 문제는 이 물음에서 출발한다.
'대중의 기억을 재편성하는 것'(미셸 푸코)이라는 점에서 보면 문화,'특정국가의 지배적 경제행태를 막을 수 있는 장치'(아도르노)라는 점에서 보면 산업이다.
비중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이미지가 상품화되는 오늘날 영화는 문화이면서 산업이다.
유명영화제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건 바로 이런 힘,축제이자 시장이 갖는 영향력 때문이다.
올해 9회째를 맞은 부산국제영화제에 주목하는 것도 그 같은 이유에서다.
부산영화제가 창설된 것은 1996년.10년이 채 안됐지만 선발인 일본의 도쿄영화제를 제치고 아시아 최고의 영화축제로 자리잡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부산영화제의 성과는 놀랍다.
도쿄나 홍콩으로 가던 국제 영화관계자의 발길을 부산으로 돌려놓았고 그 결과 올해 출품작 63개국 2백64편 중 세계 첫선 작품인 월드프리미어만 40편에 달했다.
투자자와 아시아 감독을 이어주는 PPP(부산프로모션플랜)는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자파르 파니히 감독의 '순환')을 탄생시켰다.
무엇보다 한국영화의 세계 진출에 획기적 전기를 마련했다.
영화제 창설 전 3편('물레야 물레야''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유리') 뿐이었던 칸영화제 초청작은 97년 이후 올해까지 30여편으로 늘었고,'취화선'과 '올드 보이'는 감독상과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한국영화 배급 및 수출이 급신장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지역행사의 하나로 시작된 부산영화제가 이토록 힘을 갖게 된 요인은 무엇인가.
우선적으로 꼽히는 건 처음부터 '아시아 영화제'로서의 특성을 강조하고,경쟁체제가 아닌 비경쟁영화제로 운영했다는 점이다.
어설프게 세계 영화제와 경쟁 체제를 내세우지 않고 아시아 영화의 장이자 비경쟁임을 강조,전세계 영화관계자들이 부산에 오면 참신한 아시아영화와 감독을 만나고 다른 곳에 출품되지 않은 역작을 발견하리라 믿도록 한 게 주효했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PPP의 활성화다.
투자자와 감독 모두에게 윈윈이라는 인식이 주요 영화인들을 끌어모은 셈이다.
바닷가에서 열린다는 점에서 칸과 비슷하지만 한결 자유롭고 시끌벅적한 부산의 분위기,유럽 영화제와 달리 관객의 80∼90%가 20대 안팎의 젊은층일 만큼 역동적인 것도 부산영화제가 관심을 끄는 이유다.
일관성 있는 운영 또한 높이 평가된다.
부산영화제 정착에 1회 때부터 재정 확보와 섭외를 맡아온 김동호 집행위원장의 꾸준하고 꼼꼼한 관리와 노력이 크게 작용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인맥이 생명인 영화제의 특성상 초대받지 않은 해외영화제에도 참석하고,재정 확보를 위해 한끼 두번 식사는 예사였다고 할 정도다.
그러면서도 작품 선정은 전문 프로그래머에게 맡기는 등 운영과 작품 선정을 구분한 것도 공정성과 권위를 확보한 방법이다.
또 한가지,개폐막식에서 영화관계자 외에 일절 소개하지 않음으로써 영화제가 정치인이나 지자체장들의 유세장 내지 홍보무대로 유용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영화제가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힘이다.
부산영화제에도 해결해야 할 과제는 많다.
매년 여기저기 손벌리지 않도록 기금을 장만하고,최근 규모를 확충한 도쿄와 홍콩,방콕 영화제의 추격도 따돌려야 한다.
문화산업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지자체마다 앞다퉈 국제행사를 개최한다. 그러나 축제건 박람회건 견본시장이든 제대로 자리잡고 생명력을 가지려면 색깔을 분명히 하고,운영의 일관성을 기하고 지역민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게 필수적이다.
유력인사 소개에 몇십분씩 할애,참석자들을 질리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함도 물론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