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핀란드 네덜란드 등 유럽 강소국을 직접 둘러보고 "국가경쟁력을 높이자" 시리즈 집필에 참여했던 국가경쟁력플랫폼 소속 김광두 서강대 교수,이영선 연세대 교수,이필상 고려대 교수가 결산 좌담회를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이 자리엔 지난 3년간 주(駐)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로 프랑스 파리에서 근무하다 지난 8월말 귀국한 이경태 전 대사도 참석해 유럽 강소국의 경쟁력 비결과 한국이 얻어야할 교훈 등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이계민 한국경제신문 논설주간 사회로 본사 회의실에서 열린 좌담회 내용을 정리한다.



[ 참석자 ]


김광두 서강대 교수, 이영선 연세대 교수, 이필상 고려대 교수, 이경태 前OECD 대사


사회 : 이계민 본사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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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민 논설주간(사회)=스위스 세계경제포럼(WEF)이지난 13일 발표한 '2004년 국가 경쟁력 보고서'에서 한국의 순위는 29위로 11계단이나 떨어진 반면, 핀란드가 1위에 오른것을 비롯해 스웨덴 네덜란드 등 유럽강소국들은 대거 상위권을 지켰습니다. 마침 공동취재단이 이들 유럽강소국을 둘러보고 왔는데, 가장 인상적으로 느끼신 점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시죠.


<>이필상 교수=이번에 돌아본 나라들은 이념 성향을 떠나 "경제를 살려,우선 잘먹고 잘살자"는 실용적 공동체 의식이 무척 강했습니다.


모든 나라들이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를 전후해 경제위기를 겪었는데 모두 극복하고 선진국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공통점도 있었죠.세계 경제는 이렇게 소용돌이 치는 데 우린 우물안 개구리식으로 싸움만 하고 있다는 생각에 부끄러움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사실 우린 공동체 의식을 잃은지 오래지 않습니까.


<>김광두 교수=그 나라들이 갖고 있는 갈등 해소구조가 무엇보다 부러웠습니다.


모든 나라가 나름의 갈등이 있긴 했지만 유럽 강소국들은 잘 해결해 나가는 구조가 있었죠.거기엔 지도층의 솔선수범이 있었습니다.


부패하지 않고 겸손한 모습은 계층간 갈등을 완화시키는 완충역할을 했습니다.


국민 전체가 하나의 국가 비전에 대한 합의를 갖고 움직인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자신들이 정말 잘 할 수 있는 기술과 분야만을 선택해서 집중 투자해 국가를 발전시킨다는,그런 컨센서스가 있었지요.


<>이영선 교수=오랜 민주주의 역사,합리적인 타협문화,건설적인 정치 등이 우리와는 정말 달랐어요.


우리도 그런 경제 외적인 "사회적 틀"을 갖추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경태 전 대사=작년 봄 프랑스에선 정부의 연금개혁안에 반대하는 교사와 공기업 근로자들의 파업이 있었죠.파업과정에서 시위도 벌어졌지만,매우 평화적이었습니다.


또 예정대로 딱 1주일만 파업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 조용해지더군요.


그 사이 정부는 개혁안을 일부 수정해 국회에서 통과시키고 시행하더라구요.


우리와 비교해 갈등해소 시간이 짧고 비폭력적이라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양측 모두 타협 용의가 있고 자세가 돼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사회=갈등 해결 방식을 비롯해 우리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김 교수=유럽 강소국들과 비교해 정치시스템과 정당이 크게 다릅니다.


유럽 강소국에선 여야 모두 국가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들로부터 평가받으려 합니다.


유럽연합(EU)통합에 따라 다른 회원국들과의 경쟁압력도 작용하는 것 같았습니다.


반면 한국 정치권은 세계의 흐름에 상대적으로 둔감합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정치적 이해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국가 전체의 이익보다는 당리당략과 선거전략 차원에서 국가의 중요 정책을 추진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것부터 바로 잡아야 해요.


<>이영선 교수=기업활동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 간여도 문제입니다.


유럽 강소국들은 기업 경영활동 만큼은 철저히 자유를 보장합니다.


저는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이기 때문에 기업에 대한 간섭이 많을 것으로 생각했어요.


그러나 복지도 법인세보다는 소득세를 많이 걷어 해결하더라구요.


기업 부담을 최소화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한 배려였습니다.


한국과 달리 정부는 경제력 집중 완화에는 관심도 없었습니다.


기업간 경쟁의 무대가 "국내"가 아닌 "글로벌"로 바뀐 상황에서,경제가 효율적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경제력 집중은 문제가 안된다는 식이었죠.반기업 정서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이필상 교수=정부가 현재의 경제위기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정부가 위기의 실체를 보지 않고 낙관만 하고 있으니 국민이나 기업 정부 간에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 겁니다.


정책에 대한 신뢰도 적고요.


그러다보니 공동체 의식은 물론 사회적 응집력도 약해지는 거예요.


정부가 먼저 우리 경제가 어렵다는 걸 인정하고 국민들이 공감하는 대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이 전 대사=한국은 복지국가로 가는 길에서 속도 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


유럽 국가들은 지금의 복지를 이루는 데 1백여년이 걸렸습니다.


물론 한국은 성장도 압축해서 일궈냈으니 복지도 짧은 시간에 이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럽 국가들이 주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복지는 각 나라의 실정에 맞는 속도로 가야 하고,복지를 위해서라도 성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때 유럽 좌파가 복지의 속도를 빨리 하려다가 모두 포기했지요.


고령화에 따른 재정 부담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좌파의 노선수정이 이뤄졌고,영국 노동당이 오른쪽으로 가기 시작했지요.


그것이 "제3의 길"입니다.


<>사회=노사관계로 논의를 좁혀 볼까요.


최근 정치권에선 네덜란드식 대타협 모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유럽 강소국의 노사관계에선 무엇을 배울 수 있었습니까.


<>이필상 교수=네덜란드는 협력적 노사관계의 토양이 있었습니다.


그 나라에선 노사가 적이 아니었습니다.


기업을 잘 키워 서로 이익을 나누는 문화가 있었지요.


한국의 경우 노사간 적대감이 큰 게 사실입니다.


우린 과거 정경유착으로 부(富)가 집중되는 현상이 생겼고,이에 대해 근로자들과 중소기업들의 피해의식이 컸습니다.


그게 사회 분위기로 고정됐지요.


그 응어리를 풀지 않고서는 타협도 합의도 불가능합니다.


서로 그간의 과오를 진솔하게 반성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해야 노사정 합의도 쉽게 될 겁니다.


그런 점에서 유럽 강소국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신분에 따른 도덕적 의무)는 배울만 했습니다.


우리도 정치권 대기업 지식인 등 지도층부터 나서서 반성하고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이영선 교수=네덜란드의 노사협력은 노와 사가 모두 합리적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예컨대 최근 조기퇴직 가능연령을 둘러싼 네덜란드 노사의 견해차는 6개월에 불과했습니다.


서로 합리적인 계산하에 협상안을 내놓기 때문에 차이가 클 수 없습니다.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타협도 쉽지요.


우리도 어떻게 노사가 합리성을 갖게 하느냐가 관건입니다.


<>김 교수=죽기 살기식 대결보다는 양보하고 타협하는 합의문화가 중요합니다.


네덜란드의 경우 폴더(Polder)라는 간척지를 만들면서 국민들 사이에 형성된 공동체 의식이 그런 합의문화를 형성했지요.


또 정부가 노사 대화에 성급하게 끼어 드는 것도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네덜란드의 노사협력 모델은 노사가 대화로 문제를 풀고 결론을 낸 뒤 정부가 정책적으로 도와줄 것이 있으면 그때 나서는 방식입니다.


<>사회=얘기를 들어보니 국가경쟁력 이라는 게 누구 하나만 잘해서 될 문제가 아닌 것 같군요.


국민 기업 정부 등 경제주체가 모두 변화해야 하는데,어떻게 변해야할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 주시죠.


<>김 교수=우선 정치권이 변해야 합니다.


현재 정치권엔 "국내형"지도자가 너무 많아요.


반면 세계적 변화를 읽고 대처할 수 있는 "글로벌형"지도자가 부족합니다.


그러다 보니 세계 질서에 맞게 행동하기 보다는 내부 정치투쟁에 골몰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부 정치인의 "갈등 조장형" 리더십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정치권 뿐아니라 국민의식도 세계화돼야 합니다.


국민 모두가 세계의 변화나 다른 나라의 움직임에 자극받고 자세를 가다듬어야 국가경쟁력을 높여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습니다.


<>이영선 교수=한국이 경쟁력을 높이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사회 곳곳의 갈등구조입니다.


이를 극복하려면 "우리 모두 한배에 탔다"는 공동체 의식을 빨리 회복해야 합니다.


공동체 의식은 결국 정치권과 정부의 지도력이 먼저 나서 만들어야 합니다.


편 가르기를 중단하고 "함께 노력하자"는 지도력을 보여줘야 합니다.


특히 최근 문제가 야기된 원전센터 부지 선정이나 쌀시장 개방 등은 정치권이 리더십을 갖고 적극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입니다.


<>이필상 교수=정부와 기업 국민 모두 "히든 카드" 하나씩을 꺼냈으면 좋겠습니다.


정부는 경제위기를 인정하고 위기를 극복하려면 성장엔진인 기업을 살려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관료들이 기득권을 버리고 기업 규제를 철폐해 기업활동을 자유롭게 해줘야 하지요.


대기업은 투자에 적극 나서 일자리를 만드는 성의를 보여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서민들의 소득이 늘어야 빚도 갚고 소비도 늘어 경제가 선순환합니다.


대기업이 이런 모습을 보이면 국민들로부터 박수 갈채를 받을 겁니다.


근로자들도 그동안의 집단이기주의나 지나친 피해의식을 벗어 던져야 합니다.


특히 고액 소득 근로자들은 자신들의 월급을 깎더라도 실업자나 비정규직 근로자와 일자리를 나누겠다는 카드를 꺼냈으면 합니다.


이렇게 모든 경제주체가 자신들의 손해를 감수하며 한발씩 뒤로 물러나야 비로소 공동체 의식이 싹트고 한 마음으로 뭉칠 수 있습니다.


<>이 전 대사=유럽 국가들의 경쟁력이 전반적으로 미국보다 낮은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히 따져봐야 합니다.


첫번째는 미국보다 복지지출이 많았기 때문이죠.한번 정착된 복지제도는 다시 되돌리기 어려운 만큼 복지 향상의 속도를 잘 결정해야 합니다.


근로시간을 줄이는 것도 우리 실정에 맞게 속도조절을 해야 합니다.


또 지난 1990년대 미국이 경쟁력을 높인 요인을 잘 봐야 합니다.


정보기술(IT)을 경제 전체에 잘 응용한 결과 아닙니까.


그런 점에서 한국은 희망이 있지요.


한국의 IT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 아닙니까.


이를 어떻게 이용해 생산성을 높이고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가에 관심을 집중해야 합니다.


정리=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