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의 대출담당 직원들 사이에선 요즘 '9·23 사태'라는 용어가 유행처럼 쓰이고 있다. 지난달 23일의 성매매특별법 발효를 두고 하는 얘기다. 이 법의 시행을 계기로 숙박업소 등의 연체관리에 비상등이 켜졌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중소기업 대출 연체잡기에 고심해오던 은행원들로서는 또 하나의 악재가 터진 셈이다. 유흥업소가 밀집한 서울 화양동의 A은행 지점 김모 대리도 '9·23 사태'의 피해자 중 하나다. 그는 요즘 퇴근 후 인근 숙박업소를 한 바퀴 돌고 귀가하는 게 일과처럼 됐다. A은행에서 대출받은 숙박업소 중 이자를 연체하기 시작한 업소들로부터 '일수 찍기'를 하기 위해서다. "통상 대출이자는 한 달에 한 번씩 받게 돼 있지만 연체 중인 현금수입업소로부터는 일수방식으로 이자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다른 은행의 대출담당 직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경기도 일산지역의 B은행 박모 대리는 수시로 인근 '러브호텔'을 돌며 주차된 차량 수,뒤뜰에 널린 수건 개수 등을 체크한다. 차량 대수나 수건 개수 등을 살펴보면 러브호텔의 영업상태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본점에서 '숙박업소에 대한 신규 여신을 중단하고 기존 여신에 대한 연체관리를 강화하라'는 지침이 내려온 데 따른 것"이라며 "실제로 예전에 비해 주차된 승용차 대수가 평소의 절반 이하로 떨어진 것 같다"고 전했다. '9·23 사태'에 대한 고민은 일선 직원들만의 몫이 아니다. 15일 박승 한국은행 총재 주재로 열린 금융협의회에서 시중은행장들은 "소호(SOHO)대출 연체율이 상승하고 있으며 특히 숙박업소의 연체가 급증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그렇다고 해서 은행들이 무작정 숙박업소에 대한 대출을 회수하기도 어렵다. 경쟁적으로 대출을 회수하다간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은행들은 신규 대출은 중단하되 연체경력이 없는 업소의 경우 가급적 만기를 연장해 주고 있다. 일례로 우리은행은 올해말까지 숙박업소의 만기도래 대출금에 대해 10% 원금 상환없이 기존 대출금리에 1%포인트를 추가 부담하는 조건으로 전액 만기연장해 주기로 했다. 국민은행의 소호지원팀장도 "숙박업소 여신은 가급적 만기를 연장해주되 신용도가 떨어지면 원금을 일부 상환받고 있다"며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금감원이 전병헌 열린우리당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2년부터 지난 6월까지 호텔 모텔 여관 등 숙박업소가 18개 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금액은 총 8조2천7백55억원이었다. 이중 상환 금액은 4조2천3백58억원이며 대출잔액은 4조3백97억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전 의원은 "은행들이 숙박업소들에 경쟁적으로 대출을 해주었다가 이번 성매매특별법 도입으로 대출이 부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