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초 워싱턴DC에서 한국특파원들을 만난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사회주의 정책이라도 썼더라면 억울하지 않았을 것이다"고 탄식했다. 좌파정책 한번 펴지도 않았고 그럴 생각도 없는데 좌파정책을 쓰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 억울하다는 항변이었다. 그런 항변에 일응 동정이 가는 것은 월가에서도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사시로 보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을 비교적 잘 아는 한 투자자는 얼마전 뉴욕을 방문한 열린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에게 한국 정부가 기업들의 임시직 채용을 일정수 이하로 줄이는 이른바 쿼터제를 실시할 생각이냐고 묻기도 했다. 임시직 근로자들을 구제하기위해 정부가 무리한 간섭을 한다는 시각이었다. 한국 못지않게 미국에서도 임시직 대우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얼마전 뉴욕타임스가 기업의 인력채용 현황을 심층분석한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올해 새로 생긴 일자리 1백20만명 중 80%가 조금 넘는 1백만명이 임시직이었다. 임시직은 주당 근무시간이 35시간이 안되는 비정규직이라고 할 수 있다. 임시직이 늘어남에 따라 전체 일자리 중 임시직 비율은 18%로 늘었다. 1997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임시직 근로자는 2명에 1명꼴로 의료보험혜택을 받지 못한다. 유급휴가는커녕 유급 병가도 없다. 그렇지만 정부가 임시직 채용에 대해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는다. 정부 관계자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인력 채용은 전적으로 기업 몫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경제가 3% 이상 성장하고 있지만 이라크 전쟁이나 유가 상승으로 앞날이 불확실한데다 정규직원들에게 지원하는 의료보험료 부담이 워낙 커 임시직 채용을 선호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해야 할 의사결정에 정부가 개입하는 듯한 인상을 준 빌미의 하나가 임시직 문제였고 그런 작은 인식들이 쌓여 사회주의정책 운운하는 상황까지 초래한게 아닌가 싶다. 임시직 채용 확대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 현상이다. 그런 현상을 대하는 주위의 시각이 다를 뿐이다. 뉴욕=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