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침소봉대냐 구태재연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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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인 열린우리당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공개됐다.
'더 내고 덜 받자'는 내용의 정부안 대신 '똑같이 내고 덜 받자'는 게 골자다.
17일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유시민 의원측은 보도자료에서 "보험료를 올리는 문제는 다음 연금 재정계산 시기인 2008년 이후 반영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다음 정권'에 가서 논의하자는 이야기다.
국민들은 헷갈릴 만하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고령화 사회가 세계최고속도로 진행 중인 상황에서 사회안전망의 최후보루인 국민연금이 이대로 가면 파탄나게 돼 있으므로 재정개혁을 위한 법개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해 왔다.
개정의 불가피성을 홍보하는 예산을 대폭 늘리기도 했다.
더욱이 참여정부는 과거 정부가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차일피일 미뤄온 인기없는 정책들을 과감하게 밀고나가는 '개혁의 진수'를 보여줄 것처럼 공언해온 터여서 여당의 '국민연금 개정 유보' 발표는 당혹스럽다.
보험료 인상 논의가 시급하지 않다면 그동안 복지부는 국민에게 '연금재정 위기'를 침소봉대해온 셈이 된다.
반대로 복지부가 국민연금의 재정악화를 뻥튀기한 게 아니라면 최근 들어 경제문제 등으로 정치적인 난관에 봉착한 여권이 흔히 역대 정부들이 위기때면 그랬듯이 골치만 아프고 인기도 없는 문제를 슬그머니 테이블 밑으로 감춘다는 의혹을 살 수밖에 없다.
사실 '현정부가 과연 밀어붙일까'하는 의구심은 정치권을 오래 상대해온 실무 공무원들 사이에 팽배해 있었다.
여당의 '유보론'이 나오기 훨씬 전부터 복지부 관계자들은 "연금을 지급받는 사람이 3백만명으로 늘어나는 2008년에 가면 국민저항이 더 심해질 것"이라며 "이번에도 정치권이 또 법개정을 미룬다면 연금재정 안정은 사실상 물건너가는 셈"이라고 우려했었다.
국민연금이 이 지경이 된 것은 '선대 정부의 원죄'로 결론이 나 있다.
국민연금 제도를 만들면서 '적게 내고 많이 주겠다'며 선심을 쓰는 바람에 후대에 엄청난 짐을 지웠다는 질책이었다.
과거 정치행태에 대해 누구보다 비판적인 여당이 또다른 원죄의 씨앗을 뿌리는 것 아닌지 걱정스럽다.
김혜수 사회부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