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피아노 판정, 공정위를 옹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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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원 < 건국대 법학과 교수 >
지난 6월 미국의 회계검사원(GAO)은 1990년대 발생한 8건의 대형 정유회사간 합병으로 휘발유 값이 갤런당 평균 2센트 올랐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대해 연방거래위원회(FTC)는 반박성명을 내고 합병심사 당시 그런 독과점 폐해를 우려해 합병기업들의 공장설비나 지분을 매각토록 했으며,GAO의 주장은 계절성,정유회사의 파업 등 외생적 가격인상 요인을 간과한 것으로 합병심사엔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논쟁에서 중요한 건 양측 모두 소비자 이익보호라는 관점에서 합병에 따른 독과점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기업 인수·합병(M&A)은 기업 입장에서 성장의 수단이지만,동종업체간 M&A는 시장의 독과점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때문에 거의 모든 국가가 심사를 통해 사전적으로 독과점 형성을 차단하고 있다.
얼마 전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익악기의 영창악기 인수를 불허한 일이 있었는데,타당한 결정이라고 본다.
일부에선 국내 피아노 시장규모가 작으므로 세계 시장을 보고 기업 덩치를 더 키워 국제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산업 논리로 공정위의 판정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M&A심사제도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잘못된 주장이다.
법리적으로 따지면 이번 공정위 결정엔 하자가 없었다.
첫째,삼익악기와 영창악기는 이미 규모면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주요 피아노 업체들의 생산량을 보면 야마하가 8만여대,삼익과 영창은 각각 4만∼5만대,가와이 3만∼4만대 등이다.
더욱이 피아노는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대규모 장치산업과 달리 규모의 경제효과가 발생하기 어렵다.
또 국내 시장규모(작년 업라이트 피아노 기준)는 약 3만대인데,인구수를 감안하면 미국(5만∼6만대) 일본(3만대)에 비해 결코 작은 시장이 아니다.
둘째,세계시장을 관련시장으로 보아 M&A심사를 한다면 국내 소비자를 보호하는 게 아니라 전세계 소비자를 보호하는 결과가 된다.
수출 여부는 국내 소비자의 선택과 관련이 없기 때문에 어느 나라도 수출국을 포함해 M&A심사를 하지는 않는다.
또 중고품과 신품 피아노는 가격차이가 크고,수요자와 유통방식 등이 달라 수요 대체가 크지 않으므로 같은 상품시장으로 보기 어렵다.
공급측면에서도 신품시장의 독점사업자는 제품의 가격,생산량,모델,내구연한 등을 중고품과 관계없이 자유로이 결정할 수 있으므로 중고품 공급이 독점사업자의 독점력 남용을 억제할 순 없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 경쟁당국에서도 중고품을 신품과 경쟁관계에 있다고 본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셋째,대부분 국가는 시장에서 퇴출될 정도의 부실기업에 대해선 M&A를 예외적으로 인정해주고 있다.
시장에서 퇴출될 한계기업이라면 M&A를 허용하더라도 시장구조가 더 나빠진다고 볼 수 없고,생산설비의 퇴출을 막기 위한 목적에서다.
그러나 휴대폰의 등장으로 호출기가 사라진 것처럼 혁신적인 기술개발 등으로 인해 제품수요가 갑자기 감소하는 사양산업이 아닌 한 시장에서 생산설비가 퇴출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때문에 실제로 예외를 인정한 사례는 매우 드물다.
영창악기의 경우도 브랜드 인지도와 기업가치가 높아 시장에서 퇴출될 정도의 부실한 기업이라고 볼 수 없고,제3자 인수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예외인정은 어렵다.
독점 형성을 규제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시장에서 경쟁체제를 유지해 소비자의 이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다.
그래서 대다수 국가들은 정부가 개입해 시장에서의 독점 형성을 막고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제 정책을 펴고 있다.
이번 삼익악기 건을 계기로 M&A심사제도에 대한 이해가 더욱 높아지길 기대해 본다.
dwko@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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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 4일자 성형표 얼라이언스 파트너즈 대표의 시론 '공정위가 피아노를 아는지…'에 대한 반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