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총수들의 '경영 명심보감'.."결단이 필요할 때 이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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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경북 구미의 LG필립스LCD 6공장. 시계 바늘이 오전 10시를 가리키자 구본무 LG 회장을 태운 차가 미끄러지듯 공장 내부로 들어왔다. 그가 구미공장을 찾은 이유는 10시30분에 시작하는 6세대 생산라인 준공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룹의 최고 어른인 구 회장이 행사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도착한 이유는 뭘까. 길이 뻥 뚫려서? 아니다. 그는 구미공장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LG비산복지관에서 출발했다. LG그룹 관계자는 "구 회장의 좌우명에 답이 있다"고 말한다.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그는 이런 좌우명을 지키기 위해 누구를 만나더라도 30분 일찍 모습을 보인다. 오래된 습관이라 '회장님 정도 되면 조금 늦게 나오셔도 된다'는 주변의 얘기도 소용없다.
구 회장은 약속시간보다 먼저 나오는 게 상대방을 존중하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믿는다. LG 관계자는 "언젠가 한 임원이 '길이 막혀 늦었다'고 변명을 늘어 놓았더니 '더 일찍 출발하면 됐을 것 아니냐'고 핀잔을 주더라"고 말했다.
흔히 좌우명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있다고 한다. 인생철학이 담겨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룹 총수의 좌우명엔 한 가지가 더 플러스된다. 총수 개인뿐 아니라 그가 이끄는 회사에 대해서도 감을 잡을 수 있다는 것.
구 회장의 경영 스타일에도 좌우명이 묻어있다. 그는 자회사 경영진과 약속한 경영 목표에 대해선 반드시 이행 여부를 확인한다. 또 기업실적이 좋지 않을 경우 주주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경청(傾聽)'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선친인 고 이병철 회장이 1979년 휘호로 써준 게 계기가 됐다. 경청은 단순히 소리를 듣는 게 아니라 주의를 기울여 듣는 것으로 마음을 바르게 하고 몸을 닦는 '정심수기(正心修己)의 도(道)'를 뜻한다.
이런 좌우명은 이 회장의 경영 스타일에 그대로 녹아있다. 그는 사장단 회의를 주재할 때도 말하기보다는 듣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지난 2001년 플래시메모리를 독자추진하느냐,도시바와 합작하느냐를 결정할 때도 이 회장은 먼저 황창규 사장을 비롯한 사내·외 인사의 다양한 의견을 '경청'한 뒤 독자 추진키로 결정했다.
삼성 관계자는 "이 회장은 먼저 각계의 의견을 경청한 뒤 판단이 서면 단호하게 추진하는 스타일"이라며 "이 회장의 좌우명은 삼성의 경영전략 전반에 스며들어 있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의 좌우명은 '일근천하무난사(一勤天下無難事)'다. '부지런하면 세상에 어려울 것이 없다'는 뜻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정주영 회장에게 써줬던 휘호이기도 하다.
정 회장은 실제 20여년간 매일 아침 6시에 출근해 저녁 늦게까지 업무를 챙기는 등 부지런함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정 회장의 좌우명은 두산그룹 박용오 회장의 좌우명(부지런한 사람이 성공한다)과도 일맥상통한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좌우명은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다. 김 회장은 '죽기를 각오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이 문구를 외환위기를 전후해 그룹내 사무실 벽면마다 써붙이도록 했다.
한때 37개에 달하던 계열사 수를 18개로 줄인 것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롯데그룹의 경우 '거화취실(去華就實·겉치레를 삼가고 실질을 추구한다)'이란 신격호 회장의 좌우명이 신동빈 부회장에게 그대로 내려오면서 '내실 경영'이란 그룹 경영의 모토로 완전히 자리잡은 상태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매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자'는 좌우명을 지키기 위해 계열사 사장단 회의뿐 아니라 영업본부장단 회의,재무관리본부장단 회의 등도 직접 주재하는 등 회장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
이구택 포스코 회장 역시 '기본에 충실하고 정도를 지키자'는 좌우명에 따라 '기업윤리와 회사 이익이 상충할 때는 기업윤리를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등 정도경영을 펼치고 있다.
이웅열 코오롱 회장은 지난 96년 회장 취임과 함께 'one&only'를 좌우명으로 설정했다. 개인적으로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의 1남5녀 중 유일한 아들로 태어난데 따른 책임감을,기업경영 측면에선 '1등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