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부진이 지속되면서 올 하반기 들어 각종 통화지표 증가율이 급격히 둔화되고 있다. 지난 8월 콜금리가 인하된 데 이어 9월엔 연중 최대 자금성수기인 추석까지 들어 있었지만 시중자금은 여전히 실물부문으로 흐르지 못한 채 금융권 울타리 안에서 맴돌고 있는 것이다. 1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현금통화에 결제성예금(요구불예금+수시입출식예금)을 더한 '협의 통화(M1)'는 3개월 이동평균 증가율이 지난 6월중 10.2%에서 7월 8.8%,8월 6.0%로 떨어진 뒤 9월엔 1.6%까지 급락했다. M1에다 저축성예금과 금전신탁 등 실적배당형 금융상품을 더한 '광의 통화(M2)' 증가율(3개월 이동평균) 역시 6월 7.7%에서 7월 6.4%,8월 5.0%로 계속 낮아졌고 9월에도 내림세가 지속된 것으로 추정됐다. 가장 넓은 범위의 통화지표인 '총유동성(M3)'은 3개월 이동평균 증가율이 지난 6월 6.8%에서 7월에 7.5%로 일시 높아졌으나 8월에 6.5%,9월엔 4.1%까지 하락했다. M3는 M2에 투신 종금 등 2금융권 상품까지 합친 통화지표로 시중에 유통되는 자금의 총량을 나타낸다. 시중 통화의 출발점이 되는 본원통화 증가율(평잔 기준)도 6월 4.3%,7월 3.2%,8월 2.8%에 이어 9월엔 1.2%로 급락했다. 이는 지난 99년1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처럼 주요 통화지표 증가율이 하반기 들어 일제히 둔화된 것은 기업은 내수부진에 허덕이고 가계는 소비지출을 줄여,은행 대출이 위축됐기 때문이다. 시중자금이 금융권에 고인 채 실물로 흘러가지 못하는 동맥경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은행권의 기업대출은 8월 중 4천억원,지난달에는 7천억원 각각 감소해 8월 콜금리 인하 이후 기업대출이 늘기는커녕 오히려 1조원이상 은행으로 환류됐다. 가계대출도 지난달 1조1천억원 증가에 그쳐,8월(3조원 증가)에 비해 증가폭이 3분의 1로 둔화됐다. 은행의 소극적인 자금운용도 시중 돈흐름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중소기업 자금난 해소를 위해 정부가 은행권을 압박하고 있지만 지난달 중소기업 대출은 고작 1천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설상가상으로 하반기 들어선 해외에서의 통화공급도 줄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상반기까진 외국인 주식 순매수와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로 인해 통화지표가 예년 수준을 유지했지만 하반기부턴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며 "시장에 돈이 안 도는 것은 경제활력이 그만큼 떨어진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