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대뿐 아닙니다. 공대도 사회대도,교수들이 모이기만 하면 대학 앞날을 걱정하는 소리뿐입니다." 서울대 자연과학대 물리학부의 한 교수는 '서울대 위기론'의 진상에 대해 이같이 말문을 열었다. 어렵게 말을 시작했지만 한 번 열린 그의 말문은 그칠 줄 몰랐다. 그만큼 위기의 심각성을 실감케 했다. "의대 인기 때문인지 학부나 대학원이나 우수한 학생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과거엔 다들 우수했지만 지금은 학생간 차이가 많이 납니다. 그나마 뛰어난 학생들은 학부과정중에 미국으로 유학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서 교육수준도 많이 낮아졌죠.10년 전만 해도 미국의 톱스쿨과 같은 수준으로 가르쳤는데 지금은 솔직히 그럴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학생들이 못 따라오기 때문이죠." 왜 학부과정에서 유학을 갈까. "떠나는 학생들은 '서울대의 실험기자재 수준이 과학고와 다를 게 없다'고 말합니다. 교육 여건이 가장 큰 이유이죠.그나마 국내에서는 정상급 수준인데도 말입니다." 우수한 제자를 빼앗기는 마음은 어떨까. "우수한 애들이 의대나 한의대가는 건 사회적인 현상이니까 어쩔 수 없죠.그러나 적성에 맞아 물리학부를 택한 학생이 여길 떠나는 건 큰일입니다. 그런 애들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안간힘도 써보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습니다. 그저 교수들이 특별지도를 하는 정도죠." 정부정책도 서울대 편은 아니다. 과학기술부 정보통신부 등의 많은 연구비 지원사업 대상에는 수도권 대학이 제외돼 있다. 지역균형발전도 좋지만 우수한 연구인력이 몰린 곳을 아예 배제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그는 지적했다. 외국대학에 포스트닥터(박사후 과정)로 가는 학생을 대상으로 한 국가지원 역시 '한 대학에 몇 명'식으로 제한하다 보니 서울대생들의 기회가 박탈되고 있다. 그의 결론은 암울했다. "서울대가 2003년 과학논문인용색인(SCI) 기준으로 세계 35위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라면 앞으로 그런 (뛰어난 논문이 많이 나오는) 시기는 끝났다고 봅니다." 김현석 사회부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