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테헤란로의 밤거리를 온통 도배질했던 룸싸롱 네온사인이 하나 둘씩 꺼져가고 있다. 간혹 네온이 번쩍이는 유흥업소들도 예전처럼 흥청망청하던 분위기는 간 곳이 없다. 고객을 기다리는 웨이터들만 정문이나 카운터 앞에 5-6명씩 줄지어 서 있고 객장은 손님이 드물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주말이면 지방에서 온 원정 수강생까지 몰려 자정 넘어서까지 활발하게 움직이던 대치동 학원가도 하루가 다르게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근 1년 가까이 개점휴업 상태인 부동산중개업소도 부지기수다. 장기불황에다 부동산중과세,성매매방지법 시행 등 각종 정부정책들이 강남에 직격탄을 퍼붓는 형국이 되면서 한국의 소비.생활경제 1번지가 주눅이 들었다. 룸살롱 등 유흥업소와 부동산중개업소,입시학원의 불황은 식당,미용실,모텔,편의점 등 이들 업종에 기생(?)해온 주변 업종으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이들 업소들에 종사해온 서민들의 생계까지 위협하고 있다. ◆꺼져가는 유흥업소 네온사인 최근 강남구 역삼동의 L단란주점은 여종업원과 남자 웨이터 절반을 정리했다. 이 주점의 S상무는 "손님이 많은 목요일이나 금요일 저녁에도 겨우 3∼4개 룸만 채우는 실정"이라며 "손님도 없는 가게에 여종업원과 웨이터만 왔다갔다 하는 꼴이 볼썽사나워서…"라고 푸념했다. 그는 "주변에 문을 닫는 업소가 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주인은 가게를 처분했으면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누가 인수하려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경기 침체와 주5일 근무제 등의 여파로 매출이 내리막길을 걷던 강남 숙박업소 역시 지난달 23일부터 성매매방지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삼성동에서 숙박업소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정철민 포시즌컨설팅 실장은 "성매매방지특별법 시행 이후 강남 일대에 팔려는 모텔 매물이 평소보다 30∼40% 증가한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강남 학원가도 된서리 EBS 수능방송 실시 등을 담은 2·17 사교육 경감 대책이 나온 이후 강남·서초지역 학원가도 비상이 걸렸다. 최고 노른자위로 꼽히는 대치동 학원가들마저 학생수가 급감하고 있다. 지난 15일 오후 6시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예전 같으면 수업을 마친 고등학생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어야 하지만 중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 외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수학 전문 K학원에 들어가 상황을 묻자 학원 원장은 "보면 모르냐"며 화부터 냈다. 가까스로 만난 한 입시학원 원장은 "학생수가 50% 정도 줄었다"며 "1년 전만 해도 원장 강의에는 수강생이 몰려 한 학급당 40명씩 앉혀놓고 수업했지만 지금은 학생수가 10명을 넘는 학급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강남 입시학원 중 규모가 큰 5곳을 조사한 결과 지난 2월 5천4백77명에 달했던 수강생 수가 4월에는 3천9백97명까지 줄었다"며 "4월 이후에 조사를 안 해서 그렇지 감소 폭이 더 커졌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B학원 버스 운전기사인 조모씨(52)는 "원정 수강생이 거의 없어지면서 학원에서 운행하던 강북 버스노선이 없어진 데 이어 운행시간도 자정에서 오후 10시로 두 시간 단축됐다"며 "이러다간 일자리를 잃는 건 아닌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넘쳐나는 부동산 경매 최근 경매 시장에는 아파트뿐 아니라 학원,모텔 등 강남지역 부동산 매물이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사려는 사람이 없어 낙찰률은 물론 낙찰가율도 바닥수준이다. 부동산 경매 정보를 제공하는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 6∼8월 강남·송파·서초·강동구 아파트 경매건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6백82건)보다 72% 증가한 1천1백74건에 달했다. 하지만 인기가 없어 낙찰률과 낙찰가율은 계속 낮아지는 추세다. 강남권 4개구의 지난 8월 현재 낙찰률은 28.12%로 전년 동기(41.42%)보다 13%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낙찰가율도 전년 같은 기간(93.51%) 대비 13%포인트 이상 하락해 80.23%를 기록했다. 강남구의 경우 낙찰률과 낙찰가율은 각각 17%와 76%로,강남권 평균에도 미치지 못했다. 특히 삼성동에 있는 시가 48억원짜리 모텔(객실 50개)은 최근 수원지방법원 경매에서 두 차례나 유찰돼 현재 경매가가 30억원 아래로 떨어졌다. 평당 대지 가격이 3천5백만원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이 모텔 경매가는 이제 땅값만도 못하게 된 것이다. ◆기세 좋던 수입차 판매도 먹구름 수입차 시장에서도 강남은 풀이 죽었다. 올 상반기 전국 수입차 판매대수는 1만6백60대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15.1% 늘어난 데 비해 서울 강남구는 2천7대로 17.8%나 감소했다. 이는 서울지역 전체 판매감소율 7.1%보다도 훨씬 높은 것이다. 신사동의 한 외제차 판매상은 "부유층 세원발굴을 강화한다는 등 돈 있는 사람들을 자극하는 정책들이 쏟아지면서 강남의 이른바 '가진 계층'이 지갑을 닫았다"고 말했다. 강남이 풀이 죽은 데 비해 강북은 외제차 판매에 관한 한 부활하고 있다. 서울지역 가운데 종로구는 상반기 외제차가 3백69대 팔려 지난해 상반기 대비 98% 증가했으며 마포구와 용산구 양천구 동작구 등은 50% 안팎의 증가율을 나타냈다. 김철수.김현석.송형석 기자 kc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