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아파트의 평당 분양가가 2백92만원' 주택경기 침체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면서 업체들의 '세일' 분양이 확산되고 있다. 평당 분양가가 2백92만원인 아파트가 등장했는가 하면,분양가의 2.4%만 내면 입주 때까지 추가 자금 부담이 없는 아파트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주택경기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외환위기 당시의 아파트 세일 현상이 재연되고 있다며 주택업체들의 무더기 부도사태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하고 있다. ◆'일단 팔고 보자'식의 분양 경기 양주시 백석읍에서 '가야아파트' 미분양분 1백여가구를 분양 중인 가야종합건설은 평당 2백92만∼3백12만원에 팔고 있다. 36.9평형 가격이 1억8백만∼1억1천5백만원에 불과하다. 49평형 가격은 1억5천3백만∼1억6천3백54만원이다. 업계 관계자는 "땅값과 건축비,금융비용 등을 감안할 때 수도권에서 평당 3백만원에 분양하는 것은 손해를 감수하겠다는 것"이라며 "미분양 장기화에 따른 건설사의 위기감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경기 광명시 광명동에서 분양 중인 '새광명 현진에버빌' 22평형의 계약금은 분양가(2억2천5백만원)의 2.4%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등장한 계약금 비율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중도금도 전액 무이자 혜택을 주고 있다. ◆98년 외환위기 당시의 판박이 전문가들은 지금의 시장상황이 외환위기 직후와 비슷하다고 입을 모은다. 미분양 아파트가 쌓이고 있고 건설회사들이 줄도산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지적이다. 분양대행사인 동우H&M의 김지권 사장은 "재테크 차원의 투자수요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점에서 외환위기 때의 복사판"이라며 "지금의 시장은 투자와 실수요 모두 죽어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외환위기 직후 분양시장을 되살리는 데 앞장섰던 MDM의 문주현 대표는 "당시엔 일시적인 충격 때문에 시장이 극도로 위축됐지만 최소한 투자심리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면서 "지금은 아파트값 자체가 크게 오른 데다 현 정부의 부동산 안정의지가 워낙 강하기 때문에 시장분위기는 외환위기 때보다 더 안좋다"고 분석했다. 신완철 한화건설 부장은 "외환위기 당시 건설회사가 아파트사업권을 다른 업체에 넘기거나 땅을 저가에 매각하는 일이 많았다"면서 "지금도 그런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올인' 마케팅 총동원 신규 분양 때마다 줄줄이 미분양이 나오면서 '가능한 모든' 판촉방법이 동원되고 있다. '계약금 5%'가 일반화됐으며 아파트값이 분양가 밑으로 떨어지면 현금으로 보상해주겠다는 업체도 등장했다. 신도종합건설은 동탄신도시에서 아파트를 분양하면서 전혀 이익을 남기지 않는 '노마진 개별옵션제'를 적용했다. 소비자들에게 바닥재 가전제품 등 옵션품목을 매입원가 수준으로 공급하는 제도다. 현진종합건설은 광명 '현진에버빌' 아파트에 '가치보상제'를 도입했다. 입주 6개월 후 매매가가 분양가를 밑돌 경우 손해본 가격을 전액 보상해주는 제도다. ◆고(高)분양가 해소 여부는 미지수 업계는 그러나 이 같은 세일분양 추세가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온 고분양가 논란을 불식시키기에는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아직도 일부 업체들은 여전히 고분양가를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일부 업체들이 세일분양에 적극 나서고 있을 뿐 아직은 업계의 전반적인 추세라고 보기 어렵다"며 "하지만 지금 같은 주택경기 침체가 계속된다면 세일분양에 나서는 업체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현아 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땅값과 자재값이 계속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주택업체들이 인위적으로 분양가를 낮추기는 쉽지 않다"면서 "하지만 미분양을 털기 위한 부대서비스 강화나 금융조건 완화 등은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