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길을 두고 왜 길아닌 데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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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仁浩 < 중소기업연구원 원장 >
경제의 세계에는 '앵무새도 경제학자가 될 수 있다'라는 우스개 이야기가 있다.
경제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도 기초가 되는 '수요·공급의 법칙'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이야기일 것이다.
시장원리의 기본인 이 법칙은 너무 당연하고 명료해서 설사 경제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하지 않은 사람도 이 법칙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이 법칙만 제대로 이해하면 경제현상의 대부분은 설명이 가능하고 이 법칙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경제 문제의 대부분에 대해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 현실 경제 세계에 있어서는 이 법칙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나 이 법칙을 포함한 시장원리에 대한 이해를 기본으로 하여 우리 경제·사회의 현안 문제의 본질을 인식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거의 보기 어렵다.
시장경제의 본질에 관해 너무 쉬우면서도 명쾌한 설명을 BC 90년께 완성된 유명한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중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흔히 시장경제에 관한 사상이나 이론이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1776년)이후 구미(歐美)에서 발전돼온 것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전체 1백30편에 달하는 이 동양의 방대한 역사서 중 마지막 두 번째 편인 화식열전(貨殖列傳)에는 일찍이 저자의 다음과 같은 경제사상이 기술되고 있다.
"농민들이 먹을 것을 생산하고, 어부나 사냥꾼이 물품을 생산하고, 기술자들은 이것으로 물건을 만들며, 상인들은 이를 유통시킨다.이러한 일들이 정령(政令)이나 교화, 징발에 의한 것이거나 혹은 약속에 따라서 하는 것들이겠는가? 사람은 각자 자기 자신의 능력에 맞춰 그 힘을 다해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것이다.때문에 물건 값이 싼 것은 장차 비싸질 징조이며, 값이 비싼 것은 싸질 징조이다.사람마다 자신의 일에 힘쓰고 각자의 일을 즐거워하면, 이는 마치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과 같아 밤낮 멈추는 때가 없다.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몰려들고 억지로 구하지 않아도 백성들은 물품을 만들어 낸다. 이 어찌 도(道)에 부합되는 것이 아니며, 자연스러움의 증명이 아니겠는가."
시장경제의 원리를 어떻게 이보다 더 간명하게, 그리고 그 본질을 꿰뚫어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이 짧은 문구에는 시장경제의 본질인 물 흐르는 듯한 자율의 원리, 정부 역할의 한계, 시장 참가자들의 경쟁과 자기 책임의 원리, 수요자 선택의 원리 등이 충분히 그러나 너무 알기 쉽게 기술되고 있다.
"때문에 물건 값이 싼 것은 장차 비싸질 징조이며, 값이 비싼 것은 싸질 징조이다"라는 대목은 수요·공급의 원리에 대한 명쾌한 기술이다.
마지막 구절 "이 어찌 도(道)에 부합되는 것이 아니며…"는 바로 이 원리에 의한 경제의 흐름과 운영이 도(道), 즉 '바른 길'임을 강조하고 있다.
오늘날 얽히고설킨 수많은 우리 경제사회의 현안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이렇게 문제해결 능력을 상실한 것은 바로 이 수급원리에 바탕을 둔 시장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나 아니면 시장에서, 시장원리에 의해 문제를 인식하고 풀려는 생각이 전연 없기 때문이다.
말썽 많은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가 그렇고, 요즈음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는 대학 입시에 있어서 학교의 학생 선발권과 학생의 학교 선택권에 관한 논란도 그렇다.
노사 문제 최대의 쟁점인 노동의 유연성 문제도 바로 노사 현안을 얼마나 노동시장에서 시장원리에 의해, 다시 말하면 수급원리에 의해 풀어 갈 것이냐의 문제가 아닌가 한다.
이 밖에 무수히 많은 우리의 경제사회 현안들을 이런 관점에서 접근해 보면 왜 문제가 생기고 있고 어떻게 문제를 풀어야 할 것인지 분명하게 드러난다.
앵무새도 금방 따라 외울 수 있는 수요 공급의 법칙을 도외시하고,'시장'이라는 길에 대해 무지하거나 이를 무시하는 데서 모든 문제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사마천이 오늘에 있어 한국의 경제 사회 현실을 보면 무어라고 할 것인가? "길(道)이 있는데 왜 길을 안 가고 길 아닌 데로 가려고 하느냐"고 하지 않을까?
ihkim@kosb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