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 판결에서 "불문헌법인 대한민국 수도이전 문제에 대해 국민투표 절차를 거치지 않아 헌법상 보장된 국민투표권을 침해했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정부의 수도이전 사업은 전면 중단될 수 밖에 없게 됐다. 헌재의 이같은 판결은 국민동의절차가 없었다는 점에서 당연한 결론이다. 헌재의 판결은 존중되어야 한다. 이번 판결 내용은 정부가 주장하고 있는 신행정수도 건설계획이 그 명분과 실리와 무관하게 법제정절차와 내용에서부터 하자를 갖고 있음을 입증해 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국민의 과반수,수도권 주민의 70% 이상이 수도이전을 반대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렇다. 우리는 이미 수도이전의 부당성을 수도 없이 지적해 왔다. 수도를 왜 옮겨야 하는지,옮겨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무엇인지 그 내용이 정확히 제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몇십조원이 들어갈 수 있는 수도이전 계획이 자칫 경기침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국가경쟁력을 떨어트릴 가능성을 걱정한 때문이다. 따라서 수도이전은 진작부터 국민의 여론을 수렴해서 결정하지 않으면 안될 사안이었다. 국가적 명운을 죄우할 수 있는 중대사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부친 것부터 잘못된 일이다. 이번 헌재 판결에서도 관습헌법으로서 수도가 갖는 상징성을 내세워 '국민적 결단'을 위한 국민투표를 거치지 않은 수도이전은 부당하다는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이해관계가 저마다 다른 국민들을 설득할 명분이 부족했음을 지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정부와 여당은 수도이전을 둘러싸고 그동안 쌓인 국민적 분열과 갈등의 앙금을 푸는데 전력을 다해야 할 일이다. 지금 우리는 무의미한 수도이전 논란에 파묻히기 보다는 해야할 일이 너무나 많다.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고 있는 수도이전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기업활력을 되살릴 수 있을지,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지,투자를 늘리고 청년실업을 해소할 수 있을지,그런 곳에 모든 힘을 쏟아도 부족할 지경이다. 우선 가장 시급한 것은 그간 여야는 물론 지역간 첨예한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는 사회적 혼란부터 해소하는 일이다. 더 이상의 불필요한 논쟁이나 시위 등은 당장 중단돼야 마땅하다. 가뜩이나 우리의 경제상황은 무척 어렵고,서민생활 또한 고달프기 짝이 없다. 이제는 정치권도 경제살리기와 민생안정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여야가 더 이상 서로의 허물을 과장하거나 책임을 전가하는 일은 일단 접어두고 내년도 나라 살림살이를 들여다 보는 정기국회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주기 바란다. 특히 정부는 그동안 추진돼오던 이전작업의 중단으로 인한 혼란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응책부터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미 신행정수도 후보지까지 발표된 상황임을 감안하면 수도이전 작업 중단으로 인해 해당지역 주민들이 갖게 되는 허탈한 심정이나 엄청난 반발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이를 어떻게 해소하느냐도 매우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경제적 파장이 간단치 않다는 점이다. 당장 어제 증시에서는 건설주가 폭락하는 현상이 나타났다.그동안 신행정수도로 지목된 충남 공주ㆍ연기의 경우 부동산 투자 내지 투기열풍이 불었던 것도 사실이다. 신행정수도건설이 물거품이 되면 자칫 부동산값 폭락과 금융시장의 혼란으로 이어질 소지도 적지않다. 정말 신속하고도 철저한 대응책 마련이 필요한 이유다. 이번 사태의 원인을 따져 보면 전적으로 정치권의 책임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수도이전이 여당의 대선공약으로 내걸린 것부터 그렇고, 입법과정만 보더라도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충청표를 의식해 여당은 물론 야당까지 어정쩡한 상태로 졸속으로 통과시켰기 때문이다.이 점에 관한한 야당의 책임이 더 크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 헌재 판결은 당리당략이나 정치적 계산에 의해 이뤄진 졸속입법이 국가적으로 얼마나 큰 혼란과 낭비를 불러 오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준 것과 다름없다. 물론 이번 헌재의 판결은 신행정수도 건설특별법에 대한 위헌 판정인 만큼 앞으로도 행정수도건설 자체가 불가능해 졌다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정말 수도이전이 필요한 일이라고 판단한다면 헌법개정절차에 따라 국민투표를 통한 국민적 합의를 얻어 추진할 수 있는 문제다. 무엇보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더이상의 불필요한 국론분열과 국력낭비를 여기서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