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 이후 수도이전에 찬성해온 사람들은 물론 반대해온 사람들도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노무현 대통령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까 하고 조마조마해 하는 분위기다. 시중에는 "노통은 지고는 못 배기는 성미인데다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대통령직을 걸고 승부수를 던져온 터여서 이번에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가 파다하다. 더욱이 외신들은 '노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상처를 입었다'고 보도하는 등 자극하고 있고 일부 여권 강경파들은 정면돌파를 외치고 있다. 국민들은 집권측이 헌재의 위헌결정을 뒤집기 위해 헌법개정을 시도하고 또다시 국론이 찬반양론으로 갈려져 싸우는 사태를 우려하는 모습이다. 국민이 불안해할 정도로 집권세력은 헌재결정에 분노하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그렇게 화를 낼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우선 헌재의 결정으로 정부의 수도이전에 제동이 걸렸다는 사실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그만큼 성숙했다는 증거다. 노 대통령과 지지세력이 야당(한나라당)에 비해 차별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 '민주발전을 주도했다'는 자부심 아닌가. 그렇다면 정부와 국회가 결정한 사안이 사법부에 의해 좌절되는 경험은 그렇게 기분 나쁠 게 없지 않을까. 또 헌재의 위헌결정 이후 현 집권측이 그토록 염원하는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국민적인 공감대가 확고부동해지는 역설적인 국면이 전개되고 있다. 얼마 전까지 이른바 기득권 세력에 의해 '턱도 없는 소리'라고 일축당했던 '서울대 이전'에서부터 '공기업 지방 이전'에 이르기까지 수도권 분산에 대한 대안들이 속출하고 있고 국민적인 공감대를 얻고 있다. 그동안 '수도권 집중의 이점(여러 산업 및 우수 인력 집적에 따른 시너지효과 등)'을 주장해온 측은 반격할 엄두도 못내는 분위기다. 이 문제에 대해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던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 지사도 '수도이전 저지'라는 명분을 얻었으니 기업 지방이전 같은 실질적인 문제까지 강력히 반대하지는 못할 것이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이제 노 대통령은 수도이전 좌절에 대한 보상심리를 활용해 지방분권 및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는 명분과 호기를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이번 헌재의 위헌결정은 노 대통령 스스로는 결코 벗지 못할 수도이전이라는 '선거공약 멍에'를 벗겨준 셈이라고 볼 수도 있다. '수도이전이 안되면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이 안된다'는 이론적·경험적 근거도 확고하지 않은 상태에서 공약사업이라는 강박이 추진가속력으로 작용한 게 사실이다. '천도'라는 중앙집권적 수단으로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을 추진한다는 것부터 자가당착일 뿐만 아니라 수도가 남하할 경우 부산 대구 광주 등 지방 거점도시들이 더욱 위축되면서 지역불균형을 부채질할 것이라는 학계의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이론적으로도 이렇게 리스크가 큰 사업을 밀어붙였다가 실패할 경우 노 대통령은 '역사의 죄인'으로 기록될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그런 점에서 헌재가 대통령에게 '퇴로'를 열어줬다고 볼 수도 있다. 여러 정황을 종합해 볼 때 노 대통령은 수도이전이라는 단위전투에서 일단 패배했을지라도 지방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전쟁에서는 승기를 잡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정우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 등이 늘 강조해왔듯이 '당장의 효과보다 집권 후반기에 평가받기를 원하는 긴 안목'을 가진 정부라면 이번 사태를 대국적으로 해석하고 대응하는 안목도 갖고 있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이동우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