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광희 코오롱 사장 kenhan@kolon.com > 미국 대선을 앞두고 부시와 케리,양 진영간의 선거전이 뜨겁다. 그들의 정책 대결은 경제·사회 전반을 미세하게 훑어내고 있으며 지지자들에게는 이러한 선거전이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배움의 장이 되기도 한다. 지난주 23일 끝난 우리의 국정감사 또한 뜨거웠다. 그러나 정돈되지 못한 뜨거움은 피곤에 지친 국민들을 더 우울하게 하는데 한몫 톡톡히 했을 뿐이다. 진보와 보수,좌파와 우파,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이념 논쟁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은 아니다. 철학적 고민을 긍정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다면 시민의식을 한 단계 더 성숙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터져나오는 이념 논쟁은 무엇을 얻고자 함일까. 각론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기어이 개론을 들고 나오고 거대 담론을 만들어 낸다. 지금은 각론이 중요한 때다. 사회 기업 가정의 구성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임무가 있으며 그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 나갈 때 발전이 있다. 이것은 자기 일만 잘하면 된다는 냉소의 의미가 아니다. 참여는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가 정책 입안자 행세다. 참여할 필요가 없는 일에 참여하고 있지는 않은지,참여한 만큼 책임을 지려하는지,책임을 지는 만큼 얼마나 관심을 갖고 노력하고 있는지 한번쯤 자문해봐야 한다. 나라가 한창 어려웠던 90년대 후반,시내 한 서점에서 우연히 당시 국무총리로 재임 중이던 모교 스승을 만난 적이 있다. "경제가 많이 어렵습니다"라고 걱정스레 말문을 열었더니 "자네라면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되물으신다. 순간 마땅한 대답이 없어 어찌나 난처하던지,그리고 큰 짐을 짊어진 분에게 위로를 주지는 못할 망정 투정으로 들리지는 않았을까 얼마나 죄송스럽든지. 어렵게 찾아온 참여민주주의,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비판에만 익숙하다. 모두가 전문가인 듯 비판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알맹이가 없다. 주장은 있으나 해답을 내놓는 사람은 드물다. 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공식적인 회의 자리에서건 비공식적인 술자리에서건 비판을 자기만의 희열이자 안주거리로 삼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무능력을 숨기고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알게 모르게 던져지는 비판은 남아 있는 열정마저 식혀버린다. 자기 업무에 있어서 스스로 전문가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남을 비판하고 담론을 즐기기 전에 제자리를 찾아 전문가가 되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