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저축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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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파운드를 벌어 19.96파운드를 쓴 사람에게 남는 건 행복이지만,똑같이 벌어 20.06파운드를 쓴 사람에게 남는 건 비극뿐이다." 찰스 디킨스 작 '데이비드 카퍼필드'에 나오는 미카우버의 말로 글로벌 펀드의 개척자인 존 템플턴(92)이 즐겨 인용한 대목이다.
템플턴재단을 통해 매년 4천만달러씩 기부하는 템플턴이지만 18세부터 30년동안 신용카드도 안쓰고 집을 담보로 대출받지도 않았다.
절약하고 저축한 다음 그것을 늘려 이웃과 나누는 것이야말로 행복한 삶이라는 생각을 실천에 옮긴 것이다.
'경제적 자유로 가는 길'을 쓴 보도 셰퍼 또한 "수입이 아니라 저축으로 부자가 된다"고 말한다.
그는 또 소득이 늘수록 소비가 증가한다며 젊었을 때 얼마를 벌든지 10%는 무조건 저축하라고 조언한다.
국내에서도 저축은 오랫동안 미덕으로 간주돼 왔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초등학교와 중학교 모두 입학하는 즉시 강제로 통장을 개설하게 해 매월 얼마씩 저축하게 한 다음 학년말이면 많이 한 사람에겐 상을 줬다.
억지로 한 것이었어도 졸업할 때면 목돈이 돼 등록금을 내거나 교복을 맞출 수도 있었다.
10월26일은 마흔한번째 '저축의 날'이다.
저축의 날은 1964년 9월25일로 지정됐다가 73년 증권의 날과 보험의 날이 합쳐지면서 10월25일로 변경됐고,84년 10월 마지막 화요일로 바뀌었다.
매년 성대하게 열리던 이날 행사가 올해는 내수 진작을 촉진해야 하는 상황 때문에 조용히 치러진다고 한다.
케인스는 "당신이 5실링을 절약할 때마다 실업자가 한명씩 늘어난다"고 말했다.
물건을 덜 사면 재고가 쌓이고 그러면 임금이 떨어져 소비는 더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축이 증가해야 투자가 늘고,투자가 확대돼야 국부가 증대된다는 애덤 스미스의 주장은 자본주의 윤리의 기초다.
한국경제가 이나마 성장한 게 허리띠를 졸라매고 저축한 개발세대의 내핍정신 덕인 반면,외환위기와 이후의 신용불량자 및 가계부채 급증이 '쓰고 보자'는 풍조에 기인한 점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도덕적 해이나 자포자기에 따른 소비는 개인은 물론 사회까지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
개인의 저축은 여전히 미덕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