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명예롭게 은행을 퇴직한 K씨(54).그는 보따리를 싸들고 상하이로 왔다. 일이 있어 온 것은 아니다. '서울이 싫고,친구들 만나기도 민망해' 무작정 중국으로 왔다. 그는 대학에 적당히 언어연수 학적을 걸어놓고 소일하고 있다. 중국에 K씨와 같은 '부평초 한국인'이 적지 않다. 그들은 대학에도 있고,허름한 아파트에도 있다. 그들은 왜 중국으로 몰려드는 것일까. '중국에 기회가 많으니까'라는 답이 나올 법하다. 맞는 얘기다. 중국은 지금 우리가 지난 70년대에 겪었던 고도성장기를 지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다. 중국은 퇴직자들이 편안하게 소일하기에는 너무나 거친 땅이다. 장년층 한국인들이 중국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것은 '고역'에 가깝다. 돈 벌 기회가 있다고는 하지만, 중국은 한국보다 비즈니스 하기가 더 어려운 곳이다. 중국에서 사업해 본 사람이라면 금방 안다. 그들은 중국에 오고 싶어 온 게 아니었다. 오히려 무엇인가에 쫓겨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아직 한창 일할 나이에 직장에서 쫓겨나고,'마음은 청춘'인 실업자를 받아주기에는 한국사회는 너무 각박했다. 오갈 곳 없는 그들이 선택한 곳이 바로 중국이었다. 요즘 벌어지고 있는 기업의 '차이나 러시'도 마찬가지다. 그들 중 상당수는 중국에서 무엇을 해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한국이 힘들어 탈출하고 있다. 심지어 세계적인 반도체 업체라는 하이닉스도 중국으로 간다. 하이닉스가 '십면매복(十面埋伏:곳곳에 함정)의 땅' 중국에 투자하고 싶겠는가? 한국에서는 도저히 안되니까,그래도 살아야 하겠기에 중국을 잡은 것이다. 현대자동차가 중국에 상용차 공장을 짓는 데에도 비슷한 배경이 숨어있다. 한국에서는 여러가지로 걸리는 게 많고,힘드니까 제조업체가 도망가고 있는 것이다. '적은 항상 내부에 있다'는 일상 얘기는 오늘 한국-중국 간 벌어지는 모든 문제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오늘도 중국행 비행기에는 무거운 가슴으로 중국을 향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누가,무엇이 그들을 중국으로 쫓아내고 있는가. 상하이=한우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