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철강업계 '새판짜기'가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현대차그룹이 한보철강을 인수하면서 부실기업 정리가 일단락 된 것. 1997년 1월 한보철강 부도로 같은해말 IMF(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을 받은 외환위기를 촉발한지 7년여만이다. 영흥철강 등 다른 부실업체들도 속속 새주인을 찾으면서 이제는 경쟁력 강화가 국내 철강업계의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세계적인 철강 호황에 힘입어 설비투자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만 원재료 수급난과 철강재 가격급등이 겹치면서 국내 철강업계의 생존전략 마련 또한 시급한 과제로 대두됐다. 전문가들은 국내 철강업계가 세계적인 대형화.통합화 추세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부실 철강사 처리 일단락 INI스틸과 현대하이스코가 지난 12일 한보철강을 인수하면서 국내 철강업계의 부실업체 처리문제는 일단락됐다. ㈜한보 환영철강 기아특수강 삼미특수강 등 IMF사태를 전후해 부실화된 기업들이 대부분 새주인을 찾아 속속 정상화 대열에 합류했다. 2000년 INI스틸이 강원산업(현 INI스틸 포항공장)과 삼미특수강(현 BNG스틸)을 인수한 데 이어 이번에 한보철강마저 사들여 국내 철강산업 인수합병(M&A)을 주도하고 있다. 2002년에는 일본 야마토공업이 철근을 만드는 ㈜한보를 인수해 YK스틸로 이름을 바꿨고 동국제강그룹에서 분리된 한국철강도 법정관리 중이던 환영철강을 인수했다. 1997년 부도 이후 법정관리를 받아온 기아특수강도 지난해 세아제강이 주축이 된 세아컨소시엄에 매각됐다. 기아특수강은 2차례에 걸쳐 매각이 무산되는 진통을 겪은 끝에 인수가격 3천8백억원과 출자전환 1백억원의 조건으로 매각이 성사됐으며 올해 초 이름을 '세아베스틸'로 바꾸고 새출발했다. 지난해 말에는 법정관리 중이던 신화특수강이 동국산업에 인수됐고,지난 2월에는 쌍용의 자회사였던 진방철강이 모건스탠리에 매각됐다. 98년 5월 부도가 난 영흥철강은 지난 4월 한국철강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데 이어 최근 매각절차를 완료했다. ◆설비투자 본격화 국내 철강업계의 투자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포스코는 차세대 공법인 파이넥스의 설비투자를 진행하고 있으며 자동차용강판,고급API재,스테인리스(STS)400계열,고급전기강판,타이어코드,선박용 TMCP강,크롬(Cr)프리 표면처리강판,고탄소강 등 8대 전략제품의 판매비중을 높이고 있다. 내년 10월 가동을 목표로 2천6백90억원을 투자해 광양에 5번째 연속용융아연도금설비(CGL)도 건립하고 있다. 6번째 CGL은 11월에 착공해 2006년 6월까지 증설을 완료할 계획이다.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동국제강도 충남 당진 고대지구 30만평 부지에 철강공장을 새로 짓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대하이스코는 1백48억원을 투자해 전남 순천 및 경남 울산공장에 각각 맞춤재단용접설비(TWB) 10기 도입 공사를 진행하고 있고,세아제강은 1천2백36억원을 투입해 군산공장에 연산 30만t 규모의 CGL 건립 공사를 진행 중이다. 동부제강도 2005년 가동을 목표로 5백억원을 투자해 아산만공장에 CGL 증설을 추진하고 있으며 2백20억원을 투입해 연산 15만t 규모의 전기아연도금라인(EGL)을 신설키로 했다. 강관업체인 휴스틸은 신설되는 당진공장에 오는 2005년까지 최첨단 조관기 3기를 새로 도입하고 폐쇄되는 인천공장의 조관기 2호를 이전,현 40만t의 생산능력을 50만t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경쟁체제 돌입 INI스틸이 한보철강으로부터 인수한 당진공장을 2006년 본격 가동할 경우 연간 4백10만t의 열연강판(핫코일)을 생산하게 된다. 이는 포스코의 열연강판 독점구조가 경쟁체제로 전환되는 것이어서 국내 철강산업 구도가 급변하게 된다. 또 연간 5백만t 정도를 수입하던 열연강판 수급난에도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당진공장의 열연시설이 고철을 원료로 쓰고 있어 철광석에서 뽑아낸 쇳물로 만드는 열연강판에 비해 품질이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자동차 가전 등 고급강판용에는 포스코의 핫코일이 사용되고 INI스틸 제품은 건설용 등 저급재로 활용되는 등 상호보완구도를 구축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상위공정인 고로(高爐) 건설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의 생산 규모는 5백만t에 달할 것으로 보여 국내 3천만t과 해외 1천만t 등 모두 4천만t 체제를 갖춘 포스코와는 직접적인 경쟁이 어려울 전망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포스코와 INI스틸이 선의의 대결을 펼치면서 국내 철강업계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기 생존전략 마련 시급 전문가들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국내 철강업체들의 치밀한 전략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글로벌 경영이 확산됨에 따라 앞으로 세계 철강업계는 글로벌 대형기업과 전문화 기업으로 유형별 분화가 계속되리라는 분석에서다. 글로벌 대형기업은 전세계 고객을 대상으로 전략 거점별 생산·판매 설비를 보유하고,시장의 다양한 요구에 대응해 생산·판매구조의 분리를 촉진하면서 설비 확장과 기업간 M&A를 활발하게 추진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반면 전문화 기업은 설비 인근 지역 등 특정 지역과 고객에 초점을 맞춰 차별화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전문화된 제품을 생산하는 체제로 이원화될 것으로 보인다. 정태웅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