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개장터와 쌍계사를 지나 7km 가량을 더 달리자 도로가 끊어졌다.


지리산 자락인 경남 하동군 화개면에서도 하늘 아래 첫 동네로 손꼽히는 화개계곡 의신마을이다.


마을 끝에서 산길로 접어들어 가파른 산비탈을 5분쯤 올라가자 자그마한 평지와 초옥이 나타난다.


쌍계사 금당선원의 선덕인 도현(56)스님의 수행처 '연암토굴'이다.


스무평 남짓한 마당에 올라서자 앞산 능선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높은 산중에 어떻게 이런 평지가 숨어있었을까 싶다.


조그만 토굴 앞에서 인기척을 하자 문이 열린다.


스님은 마침 늦은 아침 공양(식사)중이다.


"아침부터 낙엽을 쓸고 대청소를 하다 보니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어제까지 마을에 있는 선재난야 뒤편의 대밭을 정리하느라 며칠간 토굴을 비웠더니 낙엽이 많이 쌓였거든요.


대밭은 가을에 솎아내고 정리하지 않으면 다음해에 잘 자라지 못해요."


아침 공양이라야 반찬도 없이 누룽지를 코펠에 끓여 먹는 게 전부이다.


그래도 스님은 누룽지의 고소함을 반찬으로 삼는다고 했다.


이 토굴에 산 지 벌써 10년째.아무도 없는 산 속에서 혼자 사는 게 불편하거나 외롭지는 않을까.


"혼자 있다니요? 늘 자신과 같이 있는 겁니다.


위파사나의 '사티(念)'는 자신의 말과 행동을 늘 살피는 것인데, 일상생활에서 마음 챙기는 공부를 하므로 혼자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요.


불편과 고독은 수행의 방편이거든요."


지난 63년 부산 범어사로 출가한 도현 스님은 한국 불교의 전통적 수행법인 간화선(화두선)과 남방 불교의 수행법인 위파사나를 모두 섭렵한 수행자.지금도 여름 겨울 안거 때에는 쌍계사 금당선원에서 정진하고 안거가 끝나면 토굴에서 수행한다.


"중 생활 40년 중 25년은 간화선을 했고,15년은 위파사나를 하고 있어요.


안거 때 선방에 앉아서도 위파사나를 하지요.


'위'는 모든 존재가 항상 변화하는 특성을,'파사나'는 '떨어져서 본다'는 것을 뜻하는 팔리어입니다.


결국 위파사나는 존재의 실상을 바로보기 위한 방법이지요."


토굴은 앙증스러울 만큼 작다.


4평이 채 안 되는 터에 1평 남짓한 방과 부엌,두 사람이 마주 앉으면 꽉 차는 마루가 전부다.


그래도 있을 건 다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선반 위에 조그만 불상을 모시고 촛불까지 켜놓았다.


방 안 벽장에는 이불과 양식이 들어 있고 경상(輕床)엔 책 몇권이 놓였다.


마루 쪽에는 넓은 창이 나 있어 방 안쪽 구석까지 햇살이 찾아든다.


마당으로 다시 나가본다.


창문 앞에는 지름이 한 발도 되지 않는 작은 연못을 만들고 연못 안에 섬까지 조성해놓았다.


마당 주위로는 오죽(烏竹)이며 소나무 등을 둘러 심었고 잎이 무성한 파초 한 그루와 통나무를 잘라 만든 다탁도 마당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이곳은 서산 대사의 스승인 부용영관 스님이 머문 터입니다.


10년 전 마을 어른의 소개로 이 곳에 토굴을 짓게 됐지요."


위파사나 수행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자 스님의 설명이 길어진다.


몸과 마음의 현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 감정에 끌리지 않고 자신을 조율할 수 있다,움직일 땐 동작을 관찰하고 움직이지 않을 땐 호흡을 관찰한다….


"존재의 실상과 본질을 알게 되면 집착하지 않게 됩니다.


예를 들어 이 컵이 예쁘게 생겼지만 언제나 깨질 수 있다는 본질을 알게 되면 좋아하면서도 집착하지 않게 되지요.


현상과 본질을 같이 보게 되니까 색즉시공(色卽是空)이 되는 것이지요.


공자도 '樂而不淫 哀而不傷(낙이불음 애이불상·즐기되 지나치게 빠지지 말고 슬퍼하되 자신을 상하게 하지 말라)'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스승에게 공부의 진척도를 점검받고 깨달음을 인가받는 간화선 전통과 달리 위파사나 수행자들은 스스로 깨달음을 점검한다고 도현 스님은 설명한다.


깨침이란 어느날 갑자기 도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생활에서 인격체로 달라지는 것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깨침이 행동이나 말로 드러나지 않으면 온전한 지혜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도인을 재는 척도라….금강경에 나오는 '4과(果)'와 염처경(念處經) 주석서인 '청정도론'에 나오는 '10결(結)'이 그 척도입니다.


불교 수행에 대한 확신을 갖고 내 안의 화와 욕심,성냄을 끊고 육체적 욕망과 이념적 갈등,자만심이나 명예욕,어리석음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단계별 척도가 갖춰져 있어요.


그러니 스스로 점검해보면 알 수 있어요.


최대의 선지식은 자기 내부에 있거든요."


도현 스님은 "수행은 스스로 만드는 행복"이라며 "화두를 들거나 '마음챙김'을 통해 깨어 있는 그 자체를 행복하게 누리라"고 덧붙인다.


어제 죽은 사람을 생각하면 오늘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 것이냐면서….스님의 '부자론'이 가을 햇살에 반짝인다.


"내 집은 3평이지만 저 앞산이 다 내 것이니 내가 진짜 부자 아닙니까."


하동=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