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든 세대 대부분은 어려서 빈 속에 구충제를 먹고 하늘이 노래졌던 걸 기억한다. 교실에서 줄지어 나가 먹던 하얀 알약은 주로 '산토닌'. 쑥의 일종인 시나쑥(일명 산토니카,통칭 시멘시네) 종자에서 추출한다는 것으로 메스꺼움과 어지러움을 유발했는데도 싼 값에 비해 효과가 있었던지 오랫동안 널리 쓰였다. 봄 가을 대변검사도 학교의 연례행사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게 1960년대까지 거위 거시로 불리던 회충 때문에 배가 볼록 나온 채 흙을 집어먹는 아이들이 수두룩했고,간디스토마 폐디스토마 촌충 요충 감염자도 엄청났다. 71년 기생충 감염률이 80%가 넘었다는 사실은 당시 상황이 얼마나 끔찍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기생충 퇴치가 본격화된 것은 64년 한국기생충박멸협회가 창립되면서부터. 66년 기생충예방법이 제정됐고,69년엔 '가토-카츠법'이라는 대변검사법이 도입됐다. 이런 노력에 인분비료 사용이 줄고 환경도 개선되면서 81년 41.1%이던 기생충 감염률은 86년 12.9%로 뚝 떨어졌다. 95년을 끝으로 대변 집단검사가 중단됐고,기생충 감염률 감소는 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시 삶의 질 향상의 사례로 제시됐다. 97년 2.4%까지 떨어졌던 기생충 감염률이 다시 높아졌다는 소식이다. 서울대 의대 채종일 교수팀이 4천1백여명을 검사한 결과 8%나 걸려 있고,특히 간디스토마가 급증했다는 것이다. 간디스토마는 종래 낙동강 일대 인구의 40∼50%가 감염됐을 만큼 널리 퍼졌었지만 민물고기 생식에 대한 경고와 하천 오염,국내에서 생산되는 특효약 '프라지콴텔' 보급에 힘입어 급감했었는데 최근 부쩍 늘어났다는 얘기다. 기생충이라고 다 나쁜 건 아니어서 구충엔 피가 굳지 않도록 하는 기능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간디스토마는 야맹 무뇨증 비장비대,심지어 간경변,구충은 빈혈 만성신장염을 유발한다. 최근 미국 뉴욕 양키스의 투수와 1루수가 기생충 감염으로 죽다 살아났다고 할 정도다. 포유동물의 수컷이 암컷에 비해 수명이 짧은 건 기생충에 더 많이 감염되기 때문이라는 보고도 있다. 이번 조사에서도 남자의 감염률이 여자의 2배로 나타났다. 기생충 질환은 환경을 깨끗이 하고 음식을 익혀 먹으면 충분히 예방 가능한 것이다. 괜스레 날 것 좋아하지 말 일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