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이 다시 급락하며 4년여만에 1천1백20원대로 내려앉았다.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기가 부진하고 외국인들이 연일 국내 주식을 순매도하는 데도 환율이 연일 하락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 2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4원60전 떨어진 1천1백28원90전에 거래를 마감했다. 장중 한때 1천1백26원60전까지 내려갔으나 장 막판 외환당국의 시장개입으로 보이는 달러 매수세가 들어오면서 낙폭을 줄였다. 시장 참가자들은 지난 25일에 이은 급락 원인을 외환당국이 시장개입의 고삐를 늦춘 데서 찾고 있다. 현재 시장 자체는 환율 하락요인과 상승요인이 혼재돼 있는데 시장개입이 느슨해지면서 아래쪽으로만 방향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환율상승 요인으론 외국인들이 15일 연속 순매도를 기록한 점이 꼽힌다. 이들이 주식을 판 돈을 외국으로 갖고 나가려면 국내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사야 하므로 상승요인으로 작용한다. 또 통화가치는 그 나라의 경제상황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국내 경제상황은 원화가치가 상승할(환율이 내려갈) 이유가 별로 없는 게 사실이다. 반대로 환율하락 요인은 원·달러환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엔·달러환율 하락세.이날도 엔·달러환율은 내림세를 이어가며 1백6엔대까지 밀렸다. 따라서 시장 상황만 보면 향후 지속적인 하락이냐,상승 반전이냐를 점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율 하락폭이 커진 것은 결국 외환당국의 환율방어 의지가 무뎌진 데서 찾을 수 있다는 게 외환시장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이진우 농협선물 부장은 "25일 1천1백40원선이 무너질 때도 외환당국은 나서지 않았고 시장에선 지금과 같은 장에서 당국의 개입이 어렵다고 보고 달러 손절매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당국의 개입을 기대했던 시장참여자들이 허둥지둥 달러 매도에 나서면서 낙폭이 커졌다는 얘기다. 정부로서도 지금같은 시기에 개입은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외환시장 개입에 대해 따가운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데다 지금처럼 세계적인 달러 약세 추세에 역행하는 방향으로의 개입은 돈만 쏟아부을 뿐 별 효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그동안의 과도한 개입으로 환율을 떠받칠만한 '실탄'에 한계를 드러낸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향후 전망과 관련,구길모 외환은행 과장은 "시장 자체로 보면 1천1백30원대가 뚫린 이상 1천1백원대까지 더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하지만 정부가 시장에서 완전히 손을 떼기는 어려울 것이며,따라서 향후 환율의 향방은 여전히 정부개입 시기에 달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