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로 불리는 알츠하이머병은 정신은 물론 육체까지 서서히 스러져가는 비극적인 병이다.


이재한 감독의 멜로영화 '내 머리속의 지우개'는 새색시 수진(손예진)의 치매를 지켜보는 남편 철수(정우성)의 아픔을 간결하면서도 절절하게 그려냈다.


자칫 진부해질 수 있는 소재는 독창적인 구성으로 참신함을 획득한다.


치매로 인한 죽음의 과정에 촛점을 맞췄던 영국영화 '아이리스'와 달리 살아있는 연인들이 공유하고 있는 추억의 소중함을 환기시킨다.


절정부는 잠시 제정신을 차린 수진이 철수에게 연서를 써 보낸 대목이다.


편지글에서는 철수와 나눈 추억들이 지워지지 않도록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


수진이 두려워하는 것은 육체적 죽음이 아니라 사랑의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수진이 철수를 알아보지 못할 때 철수의 아픔도 최대치가 된다.


영화에서 치매로 인한 기억상실은 사랑의 소멸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됐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잊혀지는 것은 죽음만큼이나 두렵다'는 사실을 극단적으로 양식화했다.


감독은 주인공들이 만나 추억을 쌓아가는 과정을 관객과 공유하도록 한 뒤 그것을 하나씩 지움으로써 안타까움을 극대화하고 있다.


두 연인의 만남과 이별의 계기가 되는 것은 수진의 건망증과 치매다.


시각과 후각에 관한 풍성한 추억들은 이들의 결속을 강화시킨다.


두 주인공이 지닌 상실의 경험도 애정을 견고하게 만드는 요소다.


철수는 어머니와의 불화로 의절했고 수진은 유부남과 헤어졌다.


말하자면 이 영화에서 상실은 사랑의 원천이자 종말인 셈이다.


정우성은 마초적인 남성으로 출발해 사랑을 계기로 부드러운 남성으로 변모한다.


직업도 목수에서 건축가로 격상되며 단순히 집짓는 일에서 '마음의 집'까지 짓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11월5일 개봉,12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