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헌제 < 대한송유관공사 사장 chohj@dopco.co.kr > 가을 하늘이 드높고 푸르다. 산하는 울긋불긋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에서 살짝 시선을 돌리면 삭막한 우리 사회가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남을 배려하거나 양보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고,각자 제몫 챙기기에 급급하다. 산업사회로 접어든 이후 우리 사회는 공동체 의식을 상실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영악한 사회가 돼버렸다. 이런 살맛나지 않는 현실을 보면서 지금으로부터 2백년도 훨씬 더 전에"도덕감정론"과"국부론"을 저술한 영국의 한 경제학자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오래 전 아마도 우리 본연의 모습이었을 아름다운 사회의 순환을 상상한다. 여기 다섯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이 있다. 어느 날 A는 B가 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A는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최선을 다해 그를 돕는다. B는 그러한 도움으로 재기하여 사업에 성공한다. 그러던 어느 날 B는 이웃인 C가 재난을 당해 어려운 처지에 놓인 것을 알게 된다. B는 A에게 진 신세를 갚는 마음으로 기꺼이 C를 돕는다. 그렇게 B의 도움을 받은 C는 D를 돕고,D는 E를 돕는다. 결국 이러한 연쇄를 거쳐 어느 날 곤경에 빠진 A는 E의 도움을 받게 된다. 처음엔 누군가 손해를 보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과적으로 이 마을에서 손해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서로 베푸는 사회가 얼마나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회인지는 반대의 경우를 상상해보면 자명해 진다. A는 B가 가져야 할 몫을 빼앗고,B는 자신이 빼앗긴 부분을 만회하기 위해 C가 가진 것을 노린다. 그렇게 해서 이 연쇄는 결국 A에게 미친다. 서로 적이 되어 탓하고 경계하며 상대의 것을 빼앗을 기회를 노리지만 아무도 덕을 본 사람은 없고 상처만 남는다. 얼마나 살벌하고 살맛나지 않는 사회인가. 물론 이는 이른바 부분균형의 가정 하에서 상상해본 순환이며,이러한 메커니즘이 가능할 만큼 현대사회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배려와 양보를 실천하는 것이 정말로 실현 불가능한 일일까? 그것은 단지 우리들 자신에게 달린 것은 아닌지..나는 그것 또한 우리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정과 이웃에서,직장과 사회 각 부문에서 배려하고 양보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건강한 인체의 혈액처럼 순환할 수 있기를 이 가을 간절히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