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성매매금지법' 그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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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 덕 < 벤처중기부 차장 >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섹스산업'은 고속성장 경제의 부산물이었다.
'땅따먹기'게임을 연상할 정도로 성장의 이면에서 섹스산업은 이곳저곳으로 영역을 확장해왔다.
자연스럽게 이 성장산업에 대한 은행들의 호감도(?)도 놓아져 목좋은 곳에 '신규 점포'를 낼라치면 시중은행마다 서로 대출을 해주겠다고 줄을 섰다.
웬만한 모텔은 방 하나에 1억원,30개면 30억원으로 감정가를 쳐줬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공단이나 신도시가 생기면 그 주변엔 으례 "향락단지"가 생성됐다.
'모텔 불패''룸싸롱 불패'의 신기루가 나타난 배경이다.
굳이 말하면 고속성장 경제의 양지세력이 기업가라면,음지세력들은 섹스산업의 후견인들이었다고나 할까.
이런 한국의 섹스산업계에 찬바람을 몰고 온 건 물론 "성매매 특별법"이다.
지난 9월23일 시행에 들어간 이 법은 인신매매.감금 등에 의한 성매매를 엄벌하고,장기적으로 성매매를 근절한다는 게 골자.여성부가 만든 만큼 그늘에 가려진 여성들에게 햇빛을 쬐주자는 게 당초 입법 취지다.
그러나 한달여가 지난 지금 집창촌에서 일하던 여성들이 자유의 몸이 됐다는 등의 소식보다는 오히려 섹스산업 위축에 시중의 관심이 옮겨가는 느낌이다.
실제로 강남의 룸싸롱과 모텔이 대거 매물로 나오고 있다고 한다.
영업부진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에서 은행들이 잇따라 대출회수에 나서는 건 당연하다.
"성매매법"의 포커스를 여성인권에만 맞춰선 곤란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 또한 현실이다.
다시말해 산업과 노동시장 재편으로도 이 문제를 접근해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2002년의 한 보고서에서 "섹스산업의 경제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4.1%인 24조원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보고서는 당시 성매매 종사 여성수를 33만명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여성단체 등에서 추론하고 있는 관련종사자수는 이보다 훨씬 비대하다.
한 여성단체는 성매매 종사자가 최대 1백50만명에 이른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거대한 시장이 그냥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당장 데모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내성균이 생기면서 사회를 더 어둡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집창촌에 대한 집중 단속 이후 성매매 조직이 주택가 등으로 침투하는 등 벌써부터 부작용이 빚어지고 있기도 하다.
풍선의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올라오는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 이번 파문은 오염되고 파괴된 우리나라의 취업생태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가난한 여성들이 집장촌이라는 "음지의 일자리"로 스며드는 것을 차단하는 사회적 시스템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
그들에게 "양지의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얘기다.
미국 등 선진국에선 "나인 투 파이브"가 철저하다.
이걸 미국식 근무조건과 기업문화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이건 여성취업을 담보하는 사회시스템의 대표적인 사례다.
출근하기 전에 아이를 학교에 보내주고,퇴근후에 아이들을 데려올 수 있도록 배려하는 제도다.
보육시스템 등 여러가지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한창 경제활동을 할 나이의 여성에게 취업문호가 굳게 닫혀있는 한 섹스산업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측하듯 "고위험 고수익"을 쫓아 더 진화해 나갈 것이다.
기로에 선 섹스산업은 "여성에게 일자리를",그리고 "여성이 일할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줄 것을 은연중 명령하고 있다.
술안주로 삼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우리시대의 숙제꺼리다.
성매매금지법,그후의 대책에 정부는 물론 각계가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nkdu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