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美ㆍEU 보조금분쟁서 배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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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덕근 <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
수년간 공방을 거듭해 오던 미국과 유럽연합(EU)간의 항공산업에 대한 보조금 문제가 WTO 사상 최대의 무역분쟁소송으로 이어질 조짐을 보이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미국의 제소와 EU의 맞제소가 WTO에 접수됐는데 앞으로 60일간의 협의 기간중에 상호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WTO 절차에 따른 소송이 개시된다.
미국은 프랑스 영국 독일 스페인이 에어버스사에 대해 초대형 여객기 생산을 위한 1백50억달러 규모의 개발착수보조금을 지원했는데, 이것이 WTO 보조금협정에 위배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EU는 미국 연방정부가 보잉사에 대해 1992년부터 제공한 2백30억달러에 달하는 연구개발지원금과 워싱턴 주정부가 보잉사에 제공하고 있는 30억달러에 이르는 세금혜택을 불법적인 보조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보조금 문제는 반덤핑 문제와는 달리 빈번하게 발생하지는 않으나 개별 기업이 아니라 상대국 정부의 정책에 대해 시비를 거는 만큼 사안의 심각성은 반덤핑문제에 비할 수 없다.
2002년에는 미국 정부가 자국 기업들의 해외영업수익에 대해 법인세 혜택을 준 것에 대해 WTO는 40억달러에 달하는 무역보복조치를 할 수 있도록 EU에 승인했다.
현재 EU는 조선산업에 대한 우리 정부 지원을 문제삼아 WTO에서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데,우리 정부도 EU의 조선산업 지원에 대해 두 건의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맞대응하고 있다.
이러한 무역분쟁들 모두 피소국 입장에서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절실한 정부 조치의 적법성에 대해 문제가 제기됨으로써 대내외적으로 분쟁해결 절차나 판결의 파장이 큰 것이 일반적이다.
현재 WTO에 제소한 바대로 양국의 소송이 진행되는 경우,양국의 정부지원조치에 대해 모두 WTO 의무 위반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양국이 그러한 보조금을 완전히 철폐할 가능성도 사실 희박하다.
EU로서는 에어버스사의 초대형 여객기 생산이 상업적으로 개시되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지원을 포기할 수 없으며 미국으로서도 최대 수출기업인 보잉사에 대한 제반 지원을 당장에 중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게 되면 WTO 분쟁해결절차 수순에 따라 결국에는 양국이 서로에 대해 막대한 규모의 무역보복조치 권한을 부여받게 될 여지가 크다.
실제 1996년 제기된 캐나다와 브라질 간의 항공산업 지원금에 대한 분쟁에서 결국 양국이 서로간의 총교역규모를 넘는 30억달러 규모의 무역보복조치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하면서 일촉즉발의 무역전쟁 단계까지 이른 적이 있다.
미국과 EU가 현재 주장하고 있는 불법적인 보조금 총규모가 4백억달러를 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다.
사실 보조금 문제는 WTO 체제에서 가장 다루기 어려운 문제다.
정부의 어떠한 지원행위를 부당한 시장개입 행위로 규정할 것인지의 원론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급변하는 세계경제 환경속에서 대두되는 정부의 역할에 대한 수요와 국제통상규범 차원의 법적 의무간에 괴리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에게는 이제까지 경제성장을 이루어오면서 유례없이 성공적으로 수행된 정부주도의 산업정책 또는 경제개발 정책에 대한 향수가 뿌리깊게 남아 있다.
시장원칙과 자율을 주창하는 기업들도 어려운 상황에서는 쉽게 정부의 역할과 지원을 요구하고 또 우리 정부도 앞장서서 지원방안과 육성책을 발표하는데 인색하지 않다.
WTO 체제에서 더이상 그러한 전통적인 방식의 정부지원이 용인되지 않고 있는데 이를 아직도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보조금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의 주요 교역상대국이 우리나라에 전담 감시요원을 상주시키는 실정이 이를 입증한다.
특히 우리는 외환위기 이후 경제개혁 차원에서 다양한 구조조정조치를 시행한 바 있는데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에 대해 최근 많은 통상차원의 문제를 겪고 있다.
미국과 EU가 보조금 문제로 유례없는 전면전을 시작하면서 자칫 불똥이 우리에게 번지지 않도록 단속이 시급한 상황이다.
/WTO 통상전략센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