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와 같은 고유가 상황에서는 연간 1백억원의 무역흑자를 내는 섬유업 전체가 공멸할 수밖에 없습니다." 화섬원료가격이 지난 2년동안에 거의 두배 가까이 폭등하면서 대구 섬유업계 대표들이 1일 정부에 긴급 대책마련을 요구하고 나섰다. 대구지역 섬유업체의 위기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최근 유가 폭등은 섬유업계 전체를 공멸의 늪으로 밀어 넣고 있다. 원유가격에 따라 화섬원료의 가격은 지난 2002년 초보다 98.8%나 상승했다. 당장 타격을 받는 원사업계는 동국합섬 코오롱 등이 원사 생산을 중단했고 대형업체인 휴비스도 다음달 수원공장의 원사생산을 중단할 예정으로 알려지고 있다. 원사업계로부터 원료를 공급받는 화섬업계의 고민은 더욱 크다. 현재 수준에서도 채산성을 맞출 수 없는데 원사업체들이 매월 단가를 인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섬유업체의 한 관계자는 "가격이 이렇게 불안한 상황에서는 바이어와 상담조차 할 수 없는 지경"이라고 말했다. 설상가상으로 내년부터 미국 시장에서의 쿼터까지 폐지될 예정이어서 대구 섬유산업은 더 이상 갈 길이 없다는 위기감이 갈수록 팽배해지고 있다. ◆중소기업 대출 회수로 벼랑끝에 몰려=섬유업계를 괴롭히는 것은 원재료 가격 인상만이 아니다. 섬유업체의 시설자금 만기가 도래하면서 섬유업종에 대해서는 3∼5% 추가 금리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병오 대구경북섬유산업협회 회장은 "이 같은 요구는 대출 연장을 해주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며 불만을 터트렸다. ◆섬유산업 왜 이렇게 됐나=한때 한국 수출의 견인차로서 역할을 했던 섬유산업은 중국 등 후발국의 추격에 밀리면서 10여년 전부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일본과 같은 첨단 기능성 섬유로의 구조조정에 실패하면서 불황의 골은 점점 깊어져 왔다. 기능성 섬유를 생산하는 H사 관계자는 "밀라노프로젝트 등 국책사업으로 경쟁력이 없는 섬유업체까지 살리려는 시도가 이어지면서 한계기업의 퇴출에 실패했다. 이제는 연착륙할 수 있는 기회마저 잃어버렸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섬유업계 지도층 자성해야=섬유업계가 이같이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업계 지도층이 책임져야 한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섬유산업을 살린다며 정부의 예산지원에 연연해 업계의 자생적인 경쟁력 육성을 망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섬유업에서 손을 떼고 부동산에 투자하는 등 뒷주머니를 차면서 단체장이라는 이름으로 단물만 빨아먹으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섬유업계의 요구사항 반영될 수 있나=섬유업계는 화섬 가격 인하와 금융권의 대출여건 및 대출연장 조건 완화 및 특별신용보증한도 확대 등 특별지원 방안 마련 등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업계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개입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경제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섬유업만 유가를 특별히 싸게 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섬유업체가 살길은 첨단고부가제품 개발과 경영효율화를 통해 업계 자율로 경쟁력을 키워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망이다. 대구=신경원 기자 shi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