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한번 돌이키면 소음도 정적이라.


지리산 반야봉 남쪽의 해발 8백m 고지에 자리잡은 칠불사(七佛寺)로 오르는 길. 깊어가는 가을은 남도의 산에도 울긋불긋 색칠을 해놓았다.




일주문을 지나 절로 향하는 길섶에는 벌써 낙옆이 수북하다.


'東國第一禪院(동국제일선원)'이라는 편액을 단 보설루(普說樓) 앞 은행나무도 노랗게 물들었다.


칠불사는 가락국의 시조인 김수로왕과 인도 공주 허황옥 사이에서 태어난 10명의 아들 중 7명이 외숙인 장유화상을 따라 출가해 모두 성불한 수행처라고 전해진다.


7왕자의 성불 소식을 들은 김수로왕은 이 곳에 큰 절을 지어 칠불사라 했다는데,창건연도가 서기 103년인 점이 특이하다.


고구려에 불교가 전해진 연도(372년)보다 2백70년 이상 앞선 시기에 남쪽으로 불교가 들어왔다는 '남방전래설'을 뒷받침하는 사례다.


보설루 아래 통로를 따라 절 마당에 들어서자 대웅전 오른편의 '亞字房(아자방)'이 눈길을 끈다.


'아자방'은 신라 효공왕 때 담공 선사가 벽안당(碧眼堂)이라는 선실을 아(亞)자 모양의 온돌방으로 조성한 데서 비롯된 이름.8㎡ 가량의 방 가운데 십자형 통로를 만들고 이 통로가 네 귀퉁이보다 한 자 반 가량 낮게 해 높은 부분은 좌선처,낮은 부분은 경행처로 사용했다고 한다.


"수행과 몸을 풀기 위한 운동을 한 방에서 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지요.


온돌을 이중구조로 만들어 한번 불을 지피면 온기가 49일이나 지속됐다고 해요.


그래서 아자방의 특이한 구조와 불가사의한 보온 효과는 중국에까지 알려졌고 담공 선사는 '구들 도사'로 불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칠불사 주지 동림(東林·54) 스님의 설명이다.


하지만 여순반란 사건 때 국군에 의해 전소된 것을 지난 82년 복원한 지금의 아자방은 온기가 닷새밖에 가지 않는다고 스님은 덧붙인다.


아자방 출입구는 신도나 관람객들이 내부를 볼 수 있도록 유리문으로 터놓았다.


정작 이곳에서 정진하는 사람에겐 적잖게 방해가 될 듯한데 동림 스님의 설명은 뜻밖이다.


"관람객들의 소음에도 불구하고 공부할 사람은 자청해서 이곳에 옵니다.


아무리 시끄러워도 한생각 돌이키면 관계없어요.


옛날엔 50명씩 수행했다고 하지만 지금은 한철에 4∼6명 가량 정진합니다.


아자방에선 묵언,하루 한끼만 먹는 일종식,장좌불와가 필수인데 그래도 오려는 사람은 많고 한번 오면 2∼3년씩 계속 눌러 앉는 사람이 대부분이어서 한 사람이 3년을 넘기지는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지요."


동림 스님도 아자방에서 두 번 안거를 난 수좌 출신이다.


동림 스님은 "아자방은 기운이 편해서 잠이 많이 온다"며 "그래서 예부터 잠만 극복하면 수행이 크게 진전되는 곳이라는 말이 전해온다"고 했다.


칠불사는 1천9백년을 넘는 사찰의 역사가 곧 선원의 역사라고 할 만큼 한국 불교사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중요하다.


서산 벽송 부휴 대은 금담 등 수많은 선사들이 이곳에서 수행했고 한국 차의 중흥조로 꼽히는 초의 선사는 아자방에서 수행하는 틈틈이 '다신전(茶神傳)'을 초록했다고 한다.


또 3·1운동 때 민족 대표 33인의 한 분으로 참여했던 용성 스님을 비롯해 석우 효봉 금오 서암 일타 청화 스님 등의 근·현대 고승들도 이곳을 거쳐갔다.


유리문 앞에서 신기한 표정을 짓고 있는 관람객들을 뒤로 한 채 아자방 왼편의 쪽문을 열고 들어서니 또 다른 경계가 나타난다.


외부인의 출입이 일절 금지된 운상선원(雲上禪院)으로 가는 길이다.


호젓한 산길을 1백50여m 가량 올라가자 숲속 양지 바른 곳에 운상선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운상선원은 옛 선원인 운상원 터에 지난 89년 문을 연 33평 규모의 전통 선원이다.


한번에 20명 가량 앉을 수 있으며 지난 여름에는 19명이 방부(입방 신청)를 들이고 정진했다.


선방 안의 정면 벽에는 불상이 봉안돼 있고 하안거 때의 용상방이 한쪽 벽을 지키고 있다.


불상 맞은편 벽에는 납자들의 서열을 정한 좌차표(座次表)와 정진시간표가 추상 같은 운상선원의 규율을 말해주는 듯하다.


새벽 3시에 예불 및 입선으로 하루를 시작해 저녁 9시 잠자리에 들기까지 하루 10시간 정진이 기본이다.


선원의 수행청규 또한 빈틈없다.


삭발·목욕은 매달 음력 14일과 그믐에 한다,결제 중에는 산문을 지키며 마을로 내려가지 않는다,오후불식·오전불식·묵언 여부는 방(榜·소임분담)을 짤 때 정한다,산철결제를 할 경우 두 달로 한다….


동림 스님은 "예부터 금강산 마하연과 더불어 한반도에서 쌍벽을 이루는 동국제일선원으로 꼽혀온 칠불사 선원의 전통과 맥을 잇기 위해 지금도 반야(지혜)의 보검을 불철주야로 갈고 있다"고 설명했다.


선원 바깥 기둥에 걸린 주련(柱聯)이 반야보검을 연마하는 납자들의 각오를 다그친다.


不是一番寒徹骨(불시일번한철골·차가움이 한번 뼈속을 사무치지 않았다면)


爭得梅花撲鼻香(쟁득매화박비향·어찌 매화꽃이 코 찌르는 짙은 향기 얻으리)


得樹攀枝未足貴(득수반지미족귀·나뭇가지에 매달리는 것 귀한 일 아니니)


懸崖撒手丈夫兒(현애살수장부아·천길 벼랑에 매달린 손을 놓아야 대장부라 하리)


하동=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