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미국도 한국도 안보가 우선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洪準亨 < 서울대교수ㆍ공법학 >
1억2천만명 이상이 참가한 선거에서 미국은 결국 부시를 택했다.
미 대통령 선거제도는 이번에도 '민주주의 본가'란 명성이 무색하리만치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지만 경쟁자인 존 케리 후보가 부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패배를 인정함으로써 상황은 끝났다.
이번 만큼 한 나라의 대통령 선거가 지구적 관심사로 떠오른 적은 없었다.
심지어 오사마 빈 라덴조차도 선거에 영향을 끼치려고 시도했을 만큼 중대한 선거였다.
한반도 정책의 향방이 걸려있기에 우리 역시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던 많은 사람들은 내심 케리 당선을 원했고 더 많은 사람들은 부시 재선으로 자칫 한반도에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위기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근심을 떨치지 못했다.
유감스럽게도 미국인들은 다시금 이라크 침공을 감행한 부시를 택했다. 5천5백만명 이상의 미국인들이 케리에게 표를 던졌지만 승리는 그의 것이 아니었다.
부시 승리를 가져온 건 뭐니뭐니 해도 안보문제였다.
9·11테러 대응 미비,이라크전 정당성 논란,경기회복 부진 등 숱한 호재를 가지고도 새 지도자로 부각시키는데 실패한 케리의 역량도 문제였지만 결정적 요인은 유권자들의 안보불안심리였다.
부시는 안보에 대한 미국인들의 불안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데 성공했다.
'전쟁 중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는 전통이 재현된 것이라거나 테러위협에 처한 준 전시상황에서 검증되지 않은 지도자 선택을 주저한 결과라고도 분석되지만 분명한 건 안보불안이 보수의 승리를 가져왔다는 사실이다.
그런 시각에서 부시 진영이 테러위험을 부각시키는 가운데 선거일 직전 돌연 테러 위협을 한 빈 라덴의 의도를 의문시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좀더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미국이 여전히 테러와의 전쟁 중임을 상기시킴으로써 안보불안을 자극해 부동층을 부시 지지로 몰아가는 데 기여한 것으로 분석된다.
마이클 무어가 '화씨 911'에서 파헤친대로 부시일가와 유착돼 그를 도우려 한 것이 아니었다면 빈 라덴은 오히려 전장에서 적을 도왔다는 돌이킬수 없는 과오를 저지른 셈이다. 그렇다면 '전범 부시의 재선을 도운 이적행위'로 처단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아이러니컬한 얘기지만 시사하는 바가 적지않다. 안보불안 전쟁위험 만큼이나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쉽고 파괴력이 큰 이슈가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다룸에 있어 부시는 성공했고 빈 라덴은 부시를 도우려던 것이 아니었다면 실패했다.
부시 재선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암운을 드리울 공산이 클 것으로 우려된다.
물론 대북 관계에서 오히려 일관되고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대화의 테이블로 나오게 만드는 효과를 기대할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태의 심각성은 북한이 소위 벼랑끝 전술에 따라 택할지도 모를 대결의 모험주의가 행여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으로 간주돼 선제공격의 빌미로 작용하거나 적어도 그런 쪽으로 위기국면이 조성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여당에는 부시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는 의원들이 많다.
반미까지는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비판의 목소리는 도처에서 들린다.비판은 정당하고 또 필요하다.
그러나 정당한 비판도 경우에 따라 한·미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거나 그로 인해 국민의 안보불안을 자극할 가능성은 없는지 점검해봐야 한다.
반면 현 정부의 안보나 대미정책에 반대해 온 야당이나 보수세력들은 의당 그런 가능성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데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어쩌면 현 시점에서 행정수도문제보다도 더 큰 파괴력을 가질수 있다.그래서 부시 당선이 확정되기 전 미국에 의원단을 파견해 안보관련 정치적 대화에 나서겠다는 얘기도 들렸다.
그러나 안보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북핵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안보에 대한 초당적 협력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의원외교도 중요하지만 안보문제에 관한한 각개약진보다는 공조가 절대 우선이다.
생존 문제에 여야가 따로 없다는 인식으로 대통령과 야당지도자들이 서로 만나 허심탄회하게 머리를 맞대고 공조의 토대를 다져 국민을 안심시켜야 할 일이다.
미국 대선은 끝났지만 우리는 이제부터 할 일이 태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