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산 < 소설가 > 국가 지도자를 크게 나눈다면 정치인과 행정가로 분류할 수 있다. 사전적인 의미에서 정치란 국가권력을 얻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모든 활동,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게 하고 상호간의 상충되는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질서를 바로잡는 역할 등을 통칭한다. 행정은 무엇인가? 정치가 말하는 광범위하고 추상적인 사무를 실제로 행하는 일이다. 입법 사법을 제외한 국가작용,법을 준수하고 법의 규제를 받으면서 공동의 목적 또는 공익을 실현하기 위해 행사하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활동이 행정이다. 언뜻 보기엔 두 가지가 비슷하지만 실은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쉽게 말해 정치는 관념이며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국민소득 2만달러시대를 열겠다,남북화해와 통일을 이루겠다는 따위는 모두 정치적인 발언이다. 실현이 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없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고 비난할 근거는 없다. 훌륭한 정치인은 국민 대다수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읽어내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비전을 제시해 사회 전체가 그쪽으로 향하도록 독려하면 된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에서 처음 산을 옮기자고 제안한 우공은 정치인이다. 정치가 방향을 정하면 그 다음엔 '어떻게'가 남는다. 그 '어떻게'를 실행하는 이가 행정가다. 그러므로 행정가는 정치인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어야 한다. 산을 옮기되 오른쪽으로 옮길 것인가 왼쪽으로 옮길 것인가,수레로 옮길 것인가 배로 옮길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은 행정가의 몫이다. 행정은 정치보다 실질적 개념이다. 따라서 행정가는 아무나 할수 있는 게 아니고 그래서도 안된다. 선진사회일수록 전문적 식견과 높은 경륜,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경험,설득력과 조정력,통찰력과 인품의 후덕함까지 겸비할 것을 요구한다. 사회가 복잡해지면 행정가의 비중도 그만큼 크고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뽑는다. 유세기간 중에는 모든 출마자가 다 정치인이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는 순간부터 당선자는 행정가가 돼야 한다. 이를 변신이라고 한다면,변신에 성공한 사람만이 유사에 길이 남는 훌륭한 지도자가 된다. 옛날의 뛰어난 지도자를 평가하는 단어 가운데 가장 흔히 쓰는 말이 문무겸전(文武兼全)이다. 무(武)는 권력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갖춰야 할 필수덕목이지만 그것으로 끝나면 일개 장수에 불과하다. 무력으로 세상을 얻었다면 반드시 뒤따라야 하는 덕목이 문(文)이다. 문을 오늘날의 용어로 바꾸면 바로 행정일 것이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다. 모든 국민의 행복과 번영을 책임진 행정가사회의 수장이다. 선거를 치를 때 지지와 반대가 얼마였든 일단 당선 후에는 전국민의 대통령이 된다. 대통령직에 취임한 순간부터 지지와 반대는 무의미해진다. 지지와 반대는 정치인의 것이지 행정가에게 적용되는 논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총리 역시 마찬가지다. 총리에 기용되는 순간 그는 정치인이 아니라 행정가요,정적까지를 포함한 모든 국민의 재상이 되는 셈이다. 요즘 경제가 정말 어렵다. 다들 어느 때보다 열심히 일하는데 왜 경기가 좀체 회복되지 않는지 모르겠다. 식구들이 뼈빠지게 일해서 돈을 벌어줘도 나날이 집안 살림은 궁핍해지고 빚만 늘어나는 격이다. 이럴 때 우리에게 절실한 사람은 행정가이지 정치인이 아니다. 정치라면 신물이 난 지 이미 오래다. 오죽하면 정치인을 수입하자는 말까지 나돌겠는가. 만나는 사람마다 이런 나라에서 살기 싫다고들 푸념한다. 그랬거나 말거나 싸구려 정치인들은 날만 새면 여전히 싸움질과 분탕질에만 골몰한다. 며칠 조용하다 싶으면 여기저기서 툭툭 불거지느니 하나마나한 헛소리뿐이다. 왜 여기에 행정가까지 가세하는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눈에서 피눈물을 더 쏟아야 불황타개와 민생고 해결이 국정의 최우선 과제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역사는 선동과 평지풍파에 탐닉하는 정치인을 오래 두고보지 않는다. 맡은 분야에서 묵묵히 땀흘리고,오직 앞만 보고 걸어가는 우직한 행정가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대접할 따름이다. /대하소설 '삼한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