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비즈니스로 성공한 '1호' 사업가가 되겠다."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에 위치한 4층짜리 건물의 옥상 사무실. 4평 남짓한 이 곳은 방글라데시인 엠디 오바이들 탈루크데르씨(48)의 회사다. 탈루크데르씨는 지난 8월 말 자본금 5천만원으로 무역회사 오바이들인터내셔날㈜을 설립했다. 한국에서 일해 모은 돈과 고향 남동생,친구들로부터 받은 투자금이 종잣돈이 됐다. 직원이라고는 사장 혼자뿐이지만 연수생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은 그에게는 꿈에 그리던 회사다. 탈루크데르씨가 한국에 온 것은 1992년. 연수생 신분으로 인천의 한 영세 제조업체에서 부품 도금일을 시작했다. 월급은 35만∼40만원. 고향에 있는 어머니와 형수,4명의 조카를 뒷바라지 하던 그에게는 큰 금액이 아니었다. 다시 인천 소래의 또 다른 업체로 옮겨 이번에는 합판 만드는 일을 했다. 월 80만원을 받고 숙식은 공장에서 해결했다. 6년을 인천에서 보낸 그는 다시 서울의 봉제 공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실 탈루크데르씨의 직업은 약사다. 고향에 약국을 소유하고 있어 '먹고 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고. 그러나 사업가가 돼 세계를 누비며 큰 돈을 벌고 싶었던 그는 사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한국행을 결심했다. 한국생활은 말그대로 '주경야독'이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한국말을 공부했다. 주말이면 외국인들을 위해 건국대학교가 무료로 여는 한국어 강좌를 들었다. 이런 노력이 오늘날 그가 자유자재로 한국말을 읽고 쓰는데 밑거름이 됐다. 가장 힘겨웠던 기억은 99년 방글라데시에 계신 어머니가 쓰러져 큰 수술을 받아야 했던 일. 당시 동료들로부터 1천만원을 꿔 고향으로 보냈다. 후에 빚을 갚는 일도 쉽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떨어져 있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더 힘들었다. 그러나 그의 '코리안 드림'은 꺾이지 않았다. 2년 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 준비를 시작해 최근 중고 PC모니터나 자수기계 등을 방글라데시로 수출하고 현지에서 가죽을 사들이는 무역업체를 차렸다. 선적한 물건은 방글라데시에 설립한 자신의 또 다른 회사로 보내질 예정이다. 지난달 현지에서 첫 주문도 받아냈다. 봉제 공장에서 일하며 만난 한국인 아내는 이제 그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고 있다. 탈루크데르씨는 "12년 동안 한국에서 살았지만 사업하는데 여전히 어려움이 많다"며 "첫 대면에서 외국인이라고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믿음과 신뢰를 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는 "비록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하지만 방글라데시인은 모두 산업연수생이거나 불법체류자라는 인식이 싹 없어지도록 한국에서 성공한 '1호' 방글라데시인 사업가가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