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유럽경제는 말이 아니었다. 영국에서는 절약운동이 거국적으로 일어났고 "내 스스로 집과 가구를 손질한다"는 뜻의 'Do It Yourself'라는 잡지가 발간돼 큰 호응을 얻었다. 패전국인 독일의 경우는 더욱 심각했다. 삶의 터전을 잃고 마음을 잡지 못한 사람들을 향해 "몸소 내집을 고쳐 세우자"는 운동이 들불처럼 퍼져 나갔다. 이 같은 'DIY운동'은 유럽 전역은 물론 미국 일본 등지로 확산되면서 생활문화로 정착돼 갔다. DIY는 곧 알뜰소비와 검소한 생활의 대명사가 된 것이다. 청소년들이 즐겨 입는 힙합바지가 어른들로부터 물려받은 청바지에서 비롯된 것이나,예술가들이 장식화된 무대의상을 거부하고 자유스러운 복장을 고집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DIY정신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무엇인가를 스스로 만들고 조립하고 고치는 DIY는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이뤄지는 작업이기도 하다. 앨빈 포플러는 이를 생산소비(proconsumer)라 명명하면서 '제3의 물결'의 징표 중 하나로 지목했다.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홈 데포'와 같은 창고형 홈센터나 '트렌드 라인'과 같은 목공전문점이 번창하면서 DIY시장 규모가 수십조원에 이른다는 사실이 그 방증인 셈이다. 최근 불경기 여파로 살림살이가 빠듯해지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새로 사지 말고 고쳐 쓰자"는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DIY의 일종인 소위 리폼(reform·수선)도우미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데 가정용 재봉틀과 옷의 보풀 제거기,가구나 생활용품을 수리할 수 있는 각종 공구세트,페인트 등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이제는 백화점 문화센터까지 나서 헌 옷 디자인 바꾸기,어른 옷을 아이 옷으로 만들기 등 옷 수선법 강좌를 잇따라 개설해 '리폼 바람'을 부추기고 있다. 불경기 탓에 리폼이 관심을 끌고 있지만 리폼은 경기에 관계없이 알뜰살림으로 권장해야 할 소비운동이 아닌가 싶다. 리폼이야말로 가계비를 줄이면서 장래의 생활을 준비하고 허례허식을 배격하는 첩경일 것이기 때문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