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추미여성 특별상' 모스크바 1086한민족학교장 엄넬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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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민족의 설움을 당하며 주눅들어 살던 고려인 자녀들이 한곳에 모여 씩씩한 모습으로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흐뭇합니다."
삼성생명공익재단 주최로 9일 열린 제4회 비추미여성대상 시상식에서 특별상을 받은 엄넬리 러시아 모스크바 1086한민족학교장(64·모스크바시 교육문화자문위원장)은 지난 92년 러시아에서 유일한 한민족학교를 설립,고려인들에게 민족의 혼을 심어주고 있다.
엄 교장이 한민족학교 설립을 결심하게 된 것은 지난 91년 처음으로 한국을 다녀간 게 계기가 됐다. 한인 4세로 태어난 그는 당시 어머니 품같은 모국에서 눈물만 펑펑 흘리다 돌아갔다고 한다. "발전한 모국을 보니 너무 자랑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나라를 위해 기여한 일도 없고,당시엔 한국말도 할줄 몰라 미안하고 부끄러웠습니다."
그는 귀국하자마자 온 집안을 단어 쪽지로 도배하다시피 하며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동시에 초ㆍ중ㆍ고교 통합과정인 한민족학교 설립을 추진했다. 그러나 지역주민들의 거센 반대에 부닥쳤다.
고려인에 대한 멸시였다. 지역주민들이 연일 반대 시위를 하고 돌팔매질을 해대는 바람에 학교 유리창이 남아나지 않았다.
엄 교장은 그러나 민족교육에 대한 신념을 꺾지 않고 자신의 월급과 연금까지 학교에 털어 넣으며 노력하기를 10년여. 지금은 입학경쟁률이 14 대 1에 이를 정도로 명문학교가 됐다. 지난 2월 고교 졸업시험에서는 러시아 3천5백여개 학교 중 3위를 기록했다.
8백여명의 학생 중 60%에 이르는 고려인 자녀들의 대학 진학률(65%)은 러시아 평균의 2배에 달해 외국인들의 입학 경쟁도 치열하다.
"요즘은 학교 설립 반대 시위에 앞장섰던 할머니가 손자 손을 잡고 찾아와 입학시켜달라고 통사정합니다."
학교가 성장한 데는 88올림픽과 월드컵축구 개최,삼성 LG 대우 같은 한국기업들의 러시아 진출도 큰 도움이 됐다. 한국기업에 취업하기 위해 이 학교를 지원하는 학생도 상당수다.
최근 한글과 한국문화 전파에 열정을 쏟고 있는 엄 교장은 "소수민족의 설움이 클 땐 한민족인 것을 숨기고 싶었지만 이젠 자랑스럽다"며 학생들에게도"민족의 대표답게 행동하라"고 주문한다.
최규술 기자 kyus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