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남산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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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를 '소나무 문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 삼칠일 동안 솔가지로 금줄을 치고,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솔가지 땔감의 연기를 맡으며 살았다.
어디 그뿐인가.
송홧가루로 다식을 만들고,솔잎으로 차를 다려 마시고,구황식으로 속껍질을 먹고,죽어서는 소나무 관속에 들어가 뒷산 솔밭에 묻혔다.
이처럼 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소나무와 인연이 있으니 소나무 문화라는 말이 그리 과장은 아닌 듯하다.
그래서인지 소나무는 항상 긍정적인 모습으로 우리 곁에 다가서 있다.
장수를 뜻하는 십장생의 하나가 소나무이며,눈보라 비바람치는 역경 속에서도 푸르른 제 모습을 유지한다 해서 꿋꿋한 절개를 상징한다.
성삼문이 죽음을 당하면서 쓴 시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제 독야청청하리라'는 아직도 충절의 표상으로 회자된다.
소나무는 또한 친근한 벗이기도 하다.
윤선도는 오우가(五友歌)에서 '더우면 꽃 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 솔아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는다'하면서 소나무에 대한 막역한 친밀감을 표시하는가 하면,율곡 이이(李珥)는 세한삼우(歲寒三友) 중의 하나로 역시 소나무를 꼽았다.
무엇보다 소나무는 애국가의 2절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에서 보듯 민족의 기상을 고취하는 나무로 각인돼 있다.
서울의 남산은 원래 울창한 송림이었다.
조선시대 태종이 장정 3천명을 동원해 1백만그루를 심었고,세조는 산지기를 두어 벌목을 막았다는 기록이 있는 걸로 봐서 남산의 소나무는 더없이 소중하게 취급됐던 것 같다.
이런 소나무들은 일제의 목재수탈과 해방 후 무분별한 땔감채취로 형편없이 훼손됐으며 주변의 활엽수에 치여 남산의 소나무는 설 곳을 잃어갔다.
마침내 서울시가 남산소나무 보호에 나섰다는 소식이다.
구불구불하면서도 키가 크고 수려하게 껍질이 붉은 남산소나무의 씨앗을 채취해 후계목으로 키운다는 것이다.
예부터 서울을 감싸도는 남산이 푸르러야 나라가 평안하다고 했는데 남산이 철갑처럼 소나무로 둘러쳐지는 날 나라가 더욱 평안해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