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사이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발언'이 눈에 띄게 나긋나긋해졌다. 국회가 정상화된 이후 한나라당을 향한 여당 지도부의 태도가 전에 없이 부드러워진 것이다. 이부영 의장은 10일 "야당도 1백20석이 넘는 정치세력이라는 사실을 현실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며 "산이 높으면 돌아가고 물이 깊으면 얕은 곳을 골라 가기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의장은 "한나라당이 색깔론을 제기하지 않는 것만 가지고도 향후 협상이나 타협이 대단히 유연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 섞인 전망을 내놨다. 천정배 원내대표도 "정기국회에서 야당과 충분히 대화한 후 주요 법안들을 처리하겠다"며 "협상 과정에서 타협할 것은 합리적으로 타협하겠다"고 강조했다. 강경 일변도이던 여당 지도부의 '대야(對野) 발언'이 하루아침에 변한 데에 정치적 속셈이 없을리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우리의 입장은 확고하지만 국가보안법 폐지 등에 대한 여론이 심각한 상황에서 무작정 밀어붙일 경우 여론악화만 가져올 뿐 득될 게 없다"는 한 당직자의 말에 정치적 계산이 담겨있다. 야당과 타협을 모색하겠다는 것보다 일단 야당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 대화하는 모양새를 갖추는 데 무게를 싣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속셈은 당내 기류에 그대로 묻어난다. 한 목소리로 대화를 강조하면서도 "국보법 등 4대 개혁법에 대해 양보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여전히 연내 처리 방침에 변함이 없음을 강조한다. 협상테이블에 앉아 야당의 양보를 반드시 얻어내겠다는 식이다. 의원들 사이에는 "개혁 법안의 내용은 고칠 게 없다. 우리가 신경쓰는 것은 민심"이라는 얘기가 나돈다. 일각에서 여론을 지나치게 의식한 '꼼수정치'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열린우리당은 "터무니없다"고 반박할 게 아니라 이 기회에 진실성을 보여 대화정치의 길을 열어야 한다. 그게 개혁과 변화를 기치로 내건 여당에 걸맞은 모습이다. 박해영 정치부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