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승합차를 몰고 전남의 한 국도를 달리던 김모씨(52.세탁업)는 교차로에서 좌회전하던 승용차와 추돌해 전치 6주의 부상을 입었다. 사고 처리를 맡았던 경찰관은 그러나 적색 신호를 무시했다며 김씨를 가해자로 몰았다. 억울했던 김씨는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지만 실망했다. 변호사는 김씨의 억울한 사정에 귀를 기울이기 보다는 수임료에만 관심이 있는 눈치였기때문. 김씨는 변호사 선임을 포기하고 몇 달 간 인터넷과 법전에 파묻혀 살다시피한 끝에 직접 소장을 제출했고 얼마전 승소판결을 받아냈다.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변호사에게 의뢰하지 않고 소송을 혼자서 진행하는 '나홀로 소송'이 늘고 있다. 2천만∼1억원 미만의 소액 민사사건의 경우 원·피고들이 변호인을 선임하지 않고 직접 소송을 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특히 소액 민사사건은 소송에서 이겨봐야 변호사 비용을 빼고 나면 남는 게 없어 나홀로 소송이 유행이다.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법률 지식과 무료상담을 제공하는 '도우미' 사이트가 잇달아 등장하면서 소송 정보에 접근하기가 쉬워진 것도 한몫하고 있다. 2004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나홀로 소송은 모두 1백32만4천8백61건으로 전체 소송의 85%가량을 차지했다. 지난 2000년 92만3천4백15건을 기록했던 나홀로 소송은 해마다 두자릿수 안팎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9월부터 시행된 개인회생제도의 경우 당초 예상과는 달리 신청자의 80%가량이 변호사에게 의뢰하지 않고 직접 신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최근 변호사에게 의뢰하지 않고 당사자가 직접 소송을 진행하는 사건이 눈에 띄게 늘었다"며 "준비서면 등을 작성하는 수준이 변호사 뺨치는 일반인도 상당수 된다"고 말했다. 나홀로 소송이 늘어나는 이유는 장기불황으로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은 소송 당사자가 많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교통사고,이혼,형사 사건 등 가장 흔한 소송의 최저비용은 대략 1백만∼3백만원대로 요즘 같은 불황속에 서민들에겐 적지않은 부담이다. 변호사들도 이 같은 고객변화에 맞춰 인터넷 홈페이지나 카페 등을 통해 '소송 도우미' 역할만 하고 큰 소송만 정식수임하는 추세다. 한 포털사이트에서 나홀로 소송 카페를 운영했던 김석준씨(37·회사원)는 "최근 들어 법무사나 변호사가 직접 운영하는 카페가 늘면서 회원이동이 심하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온·오프라인에서 '나홀로 소송'을 지원하는 나홀로소송시민연대(www.nasiyen.com)가 출범,1년여 만에 3개 지부(회원 7백여명)로 확대개편하는 등 민간단체의 활동도 활발해지고 있다. 나홀로소송 시민연대의 이철호 대표는 "최근에는 1억원대 이상의 소송가액이 걸려있는 재판에서도 나홀로 소송이 늘어나는 추세"라며 "수임료의 '실제'가 투명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나홀로 소송 증가현상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있다. 재경지역의 한 중견 변호사는 "중요한 것은 투입하는 비용대비 효율과 승소확률"이라며 "나홀로 소송이 승률까지 높은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국선변호인의 확대와 서민들을 위한 법률구조가 활성화되는 추세여서 일단 이 같은 공적구조제도를 면밀히 검토해본 뒤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관우·강동균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