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昌洋 <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ㆍ경제정책 > 이번 국회에 제출된 법률안중 국가보안법 만큼이나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게 공정거래법 개정안이다. 국가보안법이 국가안보에 관한 핵심적 법률이라면 공정거래법은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경제안보에 관한 경제헌법이다. 따라서 공정거래법은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굳건히 하는 법적 보루며 이에 대한 불가피한 규제는 최소한의 수준에 머물러야 한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은 이런 취지에 역행하고 있다. 우선 우리 경제의 개방화와 국제화가 상당히 진전된 상황에서 기업 활동과 지배구조 선택의 자유에 대한 규제를 사전적이고 조악한 논리로 더욱 강화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러한 규제강화는 이론적 근거는 물론 우리 경제구조의 역사성과 현실성을 고려하지 않은 공정거래법의 심각한 오용 또는 남용이 될 수 있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출자총액제한제도 유지와 함께 재벌계열사에 대한 특수 관계인과 다른 계열사의 의결권을 모두 합해 15%를 초과할 수 없도록 의결권상한을 현행 30%에서 크게 낮춘 것이다. 이들 핵심 개정사항은 재벌 오너 등 특수관계인이 소유지분에 비해 과도한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고 이는 법률로써 사전적이고 직접적으로 규제돼야 한다는 논리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이 논리는 이론적 근거와 우리 경제구조의 역사와 현실을 고려할 때 그 타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우선 이론적인 측면에서 볼 때 자본주의의 주식회사 제도는 다수결 원칙에 따르므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개인회사가 아닌 한 소유권과 경영권의 괴리는 본질적 현상이다. 또 소유권과 경영권의 괴리가 바람직한가와 직접적으로 규제돼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이론적인 합의를 이루기가 쉽지 않다. 자칫 이에 대한 지나친 규제는 소유권을 침해할 우려가 크다. 만일 소유권과 경영권의 괴리가 법적 규제의 대상이 돼야 한다면 규제수준에 대해서도 이론적으로 합의하기 힘들다. 우선 재벌그룹별로 소유권과 경영권의 괴리 정도가 다양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번 개정안에 제시된 의결권 상한인 15%와 전경련이 제시한 20%라는 기준은 설득력 있는 산출근거가 되지 못한다. 현실적인 측면에서도 이번 개정안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우선 기업경영 환경을 보면 자본시장의 개방과 함께 시장규율이 한층 강화됐고 문어발식 팽창경영보다는 기술 혁신에 의한 수익중시경영이 대세다. 또 이미 외국인 지분이 50%를 넘어선 기업들이 상당수에 달하고 간판기업들이 경영권 방어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개정안은 우리 기업에 대한 역차별 강화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이와함께 공정거래 당국은 특수관계인 등의 의결권을 15%로 축소하더라도 삼성전자 등 우리 간판기업에 대한 적대적 M&A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외국인 지분이 57%에 이르고 기술역량 등 값진 무형자산을 보유한 삼성전자의 경우 적대적 M&A의 표적이 될수 있다. 특히 적대적 M&A를 추구하는 자본들이 기업가적 자본이기보다는 투기적 자본으로서의 성격을 지니는 경우가 허다한 것도 고려해야 한다. 더욱이 적대적 M&A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 규제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건 아니다. 이는 출자총액제한이 투자위축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낮을 것이란 심증이 출자총액제한을 유지하는 이유가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삼성전자와 같은 세계 일류기업을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생각할 때 심증으로 규제의 정당성을 설명하려는 것은 무책임한 자세다. 만일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가 정책의도라면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다. 우리 경제구조와 기업지배구조에는 지난 60년대 이후 역사성이 깊이 배어 있다. 고질적 정경유착과 부당한 내부거래,탈법적 경영세습 등 재벌 경영의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들은 고쳐나가야겠지만 그렇다고 자본주의와 기업경영의 본질적 부분에까지 사전적이고 조악한 규제를 들이대서는 곤란하다. 세계시장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업들의 혁신과 함께 이제는 공정거래법의 혁신이 필요한 때다.